[책소개] 20th Century Urban Design in the Netherlands (1999)
bus3332025. 9. 14. 08:45
네덜란드 20세기 도시 설계 브리핑 문서
출처: Hans Ibelings의 "네덜란드의 20세기 도시 설계" (1999) 발췌본
이 브리핑 문서는 20세기 네덜란드 도시 설계의 주요 흐름, 중요한 아이디어, 사실들을 개괄적으로 제시합니다.
I. 서론 및 개요
이 문서는 20세기 네덜란드 도시 설계의 역사를 시대별로 구분하여 소개하며, 도시 개발 계획, 이론, 공간 계획, 그리고 관련 정부 정책 등 다양한 측면을 다룹니다. 특히, 추상적인 지도보다는 "구체적인 거리 수준의 모습"에 중점을 두어 네덜란드 건축 환경의 변화와 그 이면에 있는 아이디어를 조명합니다.
주요 테마:
지속적인 도시화: 20세기 내내 네덜란드는 농촌에서 도시로의 인구 이동과 인구 증가로 인한 급격한 도시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계획 도구의 증가 및 규제 강화: 공간 계획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규제되었으며, 도시 설계는 독립적인 학문으로 발전했습니다.
예외와 일반의 포괄: 이 책은 잘 알려진 하이라이트뿐만 아니라 "디자이너, 정부, 정치인들의 지배적인 아이디어의 더 평범한 산물"도 다룹니다.
II. 시대별 주요 테마 및 발전
1. 1900-1910: 도시 건설 (City Building)
늦은 도시화 시작: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네덜란드는 "시골에서 도시로의 이주와 상당한 인구 증가"로 인해 급격한 도시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주택법 (Housing Act of 1901): 이 법은 지자체가 도로, 수도관, 건물의 위치를 명시하는 것을 의무화했으며, 대규모 주택 블록 건설을 재정적으로 가능하게 했습니다. 또한, 공중 보건 문제에 대한 우려를 반영하여 "비위생적인 곳으로서의 도시에 대한 인식"을 보여줍니다.
도시 건설의 두 가지 사상: H.P. Berlage는 '양식화된' (formal) 접근 방식(바로크 시대 도시처럼 대칭과 축 강조)과 '그림 같은' (picturesque) 접근 방식(중세 도시처럼 불규칙한 조화 강조)으로 구분했습니다. Berlage 자신은 바로크 모델을 선호했습니다.
건축 중심의 도시 계획: 당시 네덜란드 도시 계획가들은 대부분 건축가였으며, 이는 "도시화의 건축적 측면에 대한 편향"을 설명합니다. 독일의 C. Sitte와 같은 이론가들의 영향이 컸습니다.
도심 변화: 1895년경부터 시작된 경제 부흥으로 인해 대규모 사무실 건물들이 도심에 들어서면서 상업과 서비스가 집중되었고, 이는 "점차적으로 주택을 도심에서 밀어냈습니다." 이로 인해 새로운 교통로 건설 및 주요 도로 확장이 필요해졌습니다.
2. 1910-1920: 전원 도시와 도시 블록 (Garden City and City Block)
전원 도시 개념의 영향: 영국의 E. Howard가 1898년에 제시한 전원 도시 이상은 네덜란드에서 "Arcadian" 도시성으로 열렬히 수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네덜란드에서는 완전한 전원 도시보다는 "녹음이 풍부하고 마을 분위기가 나는" 교외 주택 단지가 도시 내부 또는 인접 지역에 건설되었습니다.
"기념비적인 타운하우스 건설":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 같은 대도시에서는 "대규모 주택 단지"가 등장했으며, 이들은 주로 거리 지향적인 블록을 형성했습니다.
베를라헤의 암스테르담 남부 2차 계획 (Plan Zuid, 1915-1917): 이 계획은 "주택 블록이 모든 것의 척도가 된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었으며, 대량 생산된 주택 단위가 대규모 주택 블록을 형성하는 일관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전문성 강화 논쟁: 1913-1914년 Bouwkundig Weekblad에서 도시 계획의 주체가 '심미적이고 건축적으로 정보에 입각한 엔지니어'인지 '건축가'인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도시 계획은 '건축의 일부'라는 주장이 있었지만, 독립적인 학문으로서의 공식적인 인정은 보류되었습니다. 그러나 1910년대 이후 "전문성 강화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3. 1920-1930: 지역 도시 (The Regional City)
지역적 접근의 부상: 도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지역적 맥락에서 도시 문제를 보려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1924년 국제 전원 도시 및 도시 계획 협회 회의는 네덜란드 지역 계획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계획학" (Planology): J.M. de Casseres가 도시 규모를 넘어선 계획을 지칭하기 위해 만든 용어입니다.
교통 문제 해결: 자동차 수의 급증으로 인해 "교통 흐름을 최적화하고 증가하는 교통량을 관리"하기 위한 고속도로 네트워크와 순환 도로 시스템이 강조되었습니다. 1927년에는 첫 국가 고속도로 계획이 발표되었습니다.
기능 분리: 주거와 업무 기능의 분리가 중요한 목표가 되었으며, 녹지 공간이 이러한 분리를 위한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추상화 증가: 지역 및 국가 수준의 계획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도시 계획은 점차 "더 높은 수준의 추상화"를 띠게 되었고, 세부적인 마스터 플랜보다는 "광범위한 개요"에 중점을 두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아이디어: "개방형 연립 주택"과 "고층 건물"을 도시 설계 도구로 사용하는 첫 번째 심각한 실험이 이 시기에 이루어졌습니다.
4. 1930-1940: 기능 도시 (The Functional City)
지역 계획의 법적 지위: 1931년 주택법 개정으로 지역 계획이 "공식적인 법적 지위"를 얻었으며, 지자체는 지역 계획 수립을 위한 공동 위원회 설립 권한을 부여받았습니다.
연구의 중요성 증대: 계획 수립에 앞서 인구 통계, 경제 상황에 대한 자세한 정보 수집과 미래 발전 예측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습니다.
국가 계획의 구상: 1930년대 J.M. de Casseres에 의해 "국가 계획"이 구체화되었고, W.B. Kloos는 1939년 "Het Nationaal Plan"을 출판하며 "유럽 계획"으로의 단계를 제안했습니다.
"란트스타트" (Randstad) 개념: 1938년 항공 개척자 A. Plesman은 네덜란드 서부의 암스테르담, 헤이그, 로테르담, 위트레흐트 네 대도시가 "하나의 분리된 실체"를 형성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란트스타트"라고 명명했습니다.
암스테르담 종합 확장 계획 (AUP, 1934): 이 계획은 "기능주의 도시 계획의 가장 완전한 사례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되었으며, CIAM (Congrés Internationaux d'Architecture Moderne)의 "기능 도시" 개념을 수용했습니다.
"기능 도시"의 원칙: 도시 생활을 주거, 업무, 레크리에이션, 교통의 네 가지 주요 기능으로 엄격하게 분리하고, "빛, 공기, 공간"이라는 슬로건을 통해 위생적이고 개방적인 개발을 추구했습니다. 최적의 채광을 위해 주택 열을 남북 축에서 약간 벗어나게 배치하는 등의 원칙이 적용되었습니다.
5. 1940-1950: 전후 재건 (Post-war reconstruction)
전쟁의 파괴와 재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막대한 물리적 피해와 인프라 파괴로 인해 "전후 재건을 위한 계획"이 1940년부터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조용한 돌파구": 전후 재건은 거의 항상 "신중한 갱신"이었으며, 로테르담의 경우 급진적이었습니다. "개방된 도시 형태"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 널리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개방 도시 형태의 확산: 모더니즘 시대의 불가피한 표현으로 인식된 현대 도시주의는 "개방성"과 "규모 확대"를 특징으로 했습니다.
로테르담 재건 계획: W.G. Witteveen의 초기 계획은 기존 도시의 모습을 복원하려 했으나, 1946년 C. van Traa의 "로테르담 재건 및 확장 기본 계획"으로 대체되어 "개별 건물보다는 더 큰 요소들을 사용한 도시 재건"을 지향했습니다.
주택 부족 문제: 전쟁 중 주택 파괴와 전후 베이비붐으로 인해 "만성적인 주택 부족"이 발생했으며, 새로운 주택 단지 설계가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이웃 개념" (Neighbourhood Concept): "도시 거주자들에게 충분히 작고 질서 정연한 공동체를 제공하여 그들이 그곳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춘 사회적 접근 방식이 등장했습니다. 도시는 소규모 이웃, 지구, 자치구로 구성된 "분절된 도시"로 구상되었습니다.
6. 1950-1960: 열린 도시 (The Open City)
경제 회복 및 확장: 네덜란드 경제는 전전 수준을 회복하고 번영이 증가하면서, 재건축과 함께 "주택 공급량의 절반 가량이 추가 주택 건설"로 이루어졌습니다.
저층 및 중층 연립 주택 중심의 주거 단지: 대부분의 새로운 주택 단지는 상대적으로 소규모였으며, "이웃 개념"에 따라 "이질적인 인구를 수용하기에 적합한" 저층 및 중층 건물의 혼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국가 공간 계획의 시작: 1958년 "서부와 나머지 네덜란드" 보고서는 "전국적인 공간 계획 의도"를 공식화하는 첫 번째 문서였으며, 1960년 "공간 계획에 관한 보고서"의 전조가 되었습니다.
인구 및 산업 분산 정책: 란트스타트의 혼잡을 줄이고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인구와 산업의 보다 균등한 분산"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오버 스필(overspill)" 개념을 통해 란트스타트 내외부의 신도시와 기존 도시들이 인구 증가분을 흡수하도록 했습니다.
선형 도시 계획 (Linear Layout): C. van Eesteren이 렐리스타트(Lelystad)를 설계할 때 "성장 역량"을 고려하여 선형 모델을 채택했습니다.
자동차 중심 도시: 자동차 수가 급증하면서 "도시는 자동차에 적응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고, 교통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도로 확충 및 새로운 교통 회랑 건설이 추진되었습니다.
유럽의식의 부상: "유럽 대륙이 공공 의식과 공간 계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했으며, 네덜란드는 "서유럽과 세계 해양 사이의 관문 역할"을 부여받았습니다.
재개발 및 슬럼 철거: 낡고 황폐한 도심 지역의 "대규모 철거 후 재건축"이 일반적인 관행이었으며, 이는 "1970년까지 표준 관행"으로 유지되었습니다. 마스트리흐트의 스톡스트라트(Stokstraat) 재개발은 역사적 구조를 유지하려 했으나 사회적으로는 "철거 행위"였습니다.
7. 1960-1970: 메가스트럭처 (Megastructures)
국가 계획의 공식화: 1960년 "공간 계획에 관한 첫 번째 보고서"와 1965년 "공간 계획법" 제정, 1966년 "공간 계획에 관한 두 번째 보고서" 출간으로 "확고한 법적, 행정적 기반을 갖춘 전국적인 공간 계획 시스템"이 구축되었습니다.
토지 통합 및 경관 변화: 농업 합리화를 위한 "토지 통합 정책"은 농업 토지의 대규모, 규칙적인 구획으로 경관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집중 분산" (Clustered Dispersal): 2차 보고서에서 정부의 분산 정책을 위한 구체적인 개념으로 제시되었으며, 인구의 고른 분포와 무분별한 교외 확산 방지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성장을 제한된 수의 지방 자치 단체에 가능한 한 집중"시키기로 했습니다.
환경 문제 인식: 2차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환경 문제"가 인정되었으며, "공기, 소음, 방사선"과 같은 주제가 다루어졌습니다.
인구 증가에 대한 우려: 네덜란드 인구가 2000년까지 두 배로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은 "큰 동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메가스트럭처의 등장: 도시 지역 규모의 건축 복합체들이 나타났습니다. 위트레흐트의 호흐 카타리나 (Hoog Catharijne)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는 "건물과 도시를 복합체로 결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시 건축가와 도시 설계자들의 생각을 반영합니다.
비즐메르 (Bijlmermeer): 암스테르담 남동부에 건설된 "미래의 도시"로 불리는 새로운 자치구였습니다. 엄격한 교통 분리 원칙과 공원 같은 환경에 배치된 고층 건물들이 특징입니다.
시민 저항의 시작: 1960년대 말, 대규모 도시 재개발 계획(예: 헤이그의 실더스빅(Schilderswijk) 고층 주택 단지 계획)은 "지역 주민들의 점점 더 격렬한 항의"에 부딪혔습니다. 이는 1970년대에 "근본적으로 다른 전략"으로 이어졌습니다.
8. 1970-1980: 사교적인 도시 (The Sociable City)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비판: 비즐메르와 호흐 카타리나와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들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소규모 개발 및 사회성: "소규모 개발과 사회성"이 도시 설계의 새로운 슬로건이 되었습니다. "비우호적인 시멘트와 아스팔트 정글"로 인식되는 도시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발전했습니다.
"주거 구역" (Woonerf)의 인기: 자동차를 엄격히 제한하거나 아예 금지하는 주거 구역과 시골 분위기의 마을 같은 환경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습니다.
교외화 및 성장 거점 정책: 대도시 인구가 감소하고 중소도시로의 인구 유출이 심화되었습니다. 정부는 "집중 분산" 정책에 따라 "성장 거점"을 지정하여 도시의 인구 증가분을 흡수하도록 했습니다.
알메르 (Almere)의 다핵 도시: 렐리스타트(Lelystad)가 전통적인 레이아웃을 가진 반면, 1971년에 건설이 시작된 알메르는 "각 핵이 자체 중심과 독특한 분위기와 특징을 가진" 다핵 도시로 설계되었습니다.
"채소밭 도시 계획" (Cauliflower Urbanism): 1965년 공간 계획법의 결과로 나타난 "vlekkenplan" (대략적인 윤곽만 표시된 계획)은 때때로 "전체 그림을 놓치게 만들었다"고 비판받았으며, 크레센트, 막다른 골목, 주거 구역과 결합되어 "다소 확산된 모습"을 만들어냈습니다.
도심 재활성화: 교외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도심도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되었습니다. 특히 저소득층을 위한 "이웃을 위한 건설"이 정책이 되었습니다.
기존 도시 조직 존중: 도시 갱신 계획에서 새로운 해결책(새로운 구획, 거리 패턴, 주택 유형)은 종종 지역 주민들의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오래된 건물 선과 처마 높이를 기반으로 한 도시 갱신"이 선택되었습니다. "기존 도시 조직"은 본질적인 가치를 지닌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9. 1980-1990: 컴팩트 시티 (The Compact City)
도시의 부활: 이전 십년간 마을이 도시 설계의 지표였던 것과 달리, 이제 "대도시"가 도시 지역의 계획 또는 재개발 모델이 되었습니다. 고층 건물과 주변 블록의 재발견은 이러한 사고의 전환을 보여줍니다.
명확한 형태의 도시주의: "확산적인 vlekkenplan"은 "명확한 형태의 도시주의"에 대한 선호로 대체되었습니다. 암스테르담의 IJ-plein과 Venserpolder는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자율적인 도시 계획 학문: C. Weeber는 "도시 계획이 이전 수십 년 동안 희석되어 건축에 흡수되었다"고 주장하며 "자율적인 도시 계획 학문"을 옹호했습니다. 그는 공공 공간의 질이 건축보다는 "2차원 개발 계획"에 달려 있다고 보았습니다.
맥락의 중요성: "설계의 정당성은 대개 환경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기존 경관과의 관계와 "장소의 역사에 대한 증언"의 필요성이 강조되었습니다.
컴팩트 시티 개념: "고밀도와 다양한 용도가 혼합된 도시"는 도시를 활성화하고, 지역 경제를 강화하며, 이동성 증가를 억제하는 등의 여러 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1988년 "공간 계획에 관한 네 번째 보고서"에도 반영되어 "집중 정책"을 채택했습니다.
도시 재생: "도시 재생"은 새로운 과제가 되었으며, 대부분 이전 산업 및 항만 지역이었던 "원래 용도를 잃은 수많은 도시 부지"의 재개발이 추진되었습니다.
교외화 지속 및 업무 단지 형성: 도시 재활성화에 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교외화"는 1980년대에도 계속되었으며,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도심을 떠나" 도로변과 고속도로를 따라 "업무 단지"를 형성했습니다.
공공 공간 디자인의 재발견: 도시의 재발견과 함께 "도시의 공공 공간"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났으며, 광장, 거리, 공원 디자인이 붐을 이루었습니다.
10. 1990-2000: 새로운 확장 지구 (New Expansion Districts)
VINEX (Vierde Nota Extra): 1990년 "네 번째 보고서 보충"으로 발표된 VINEX는 20세기 마지막 10년 동안 네덜란드 도시 계획에서 "가장 자주 사용된 단어"였습니다. VINEX 지구는 주로 주거 지역으로 개발될 예정인 부지였습니다.
유연한 마스터 플랜: 위트레흐트의 라잇세 라인 (Leidsche Rijn)과 같은 대규모 VINEX 계획에서는 "사전 확정적인 모습 대신 조정의 여지"를 두는 유연한 마스터 플랜이 채택되었습니다.
"오르그웨어" (Orgware) 개념: Max. 1 건축 사무소는 도시 설계 계획에 "형성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정적, 정치적 요소를 "오르그웨어"라고 불렀습니다.
명확한 정체성 부여: 각 지구와 이웃에 "고유한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건물, 포장, 조경의 모습을 설계자가 세부적으로 명시하는 접근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도심의 급진적인 재개발: 로테르담 시내의 대부분은 일련의 개발 프로젝트로 "완전히 변모"했으며, 헤이그의 Utrechtse Baan은 재건축되었고, 위트레흐트에서는 Hoog Catharijne의 재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도시를 수리한다"는 개념: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전후 도시 설계에 대한 수정"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경제적 동기가 주된 이유였습니다.
전후 교외 지역의 도시 갱신 (2차):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건설된 주택 단지에서도 "도시 갱신"이 이루어졌으며, 이전의 개방된 공간을 "과감하게 재모델링"하고 건물을 지어 메웠습니다.
느린 계획 실행 속도와 그 장점: 고속 철도, 베투베 화물선, 스키폴 공항 확장 등 대규모 프로젝트들은 네덜란드에서 "좀처럼 신속하게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느린 네덜란드 협의 문화"는 "공간 계획 분야에서 큰 실수가 드물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성적 시기: 20세기 말은 도시 설계 분야가 "반성적 시기"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며, "무엇이 일어날지"에 대한 가정적인 질문을 탐구했습니다. OMA와 MVRDV의 연구는 도시화와 공간 계획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성숙의 신호: 20세기 동안 독립적인 학문으로 발전하고 전문화된 도시 설계에게 이러한 형태의 성찰은 "성숙의 신호"로 간주됩니다
NotebookLM이 추천하는 질문을 통해 알아본 책의 내용
질문1 : 네덜란드 도시 디자인은 20세기 동안 어떤 사회적, 경제적, 제도적 변화를 겪었는가?
20세기 동안 네덜란드 도시 디자인은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제도적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도시 개발 계획, 도시 디자인 이론, 공간 계획, 그리고 관련 정부 정책 전반에 걸쳐 나타났습니다.
주요 사회적 변화:
• 지속적인 도시화와 인구 증가 (세기 전반): 20세기 초 네덜란드는 마을과 소도시의 국가였으나, 19세기 말부터 시골에서 도시로의 인구 이동과 상당한 인구 증가가 결합하여 급격한 도시 성장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주로 농업에서 무역, 서비스, 그리고 산업으로의 고용 이동에 의해 추진되었습니다.
• 산업 노동자 주택 부족 및 공중 보건 우려 (세기 초): 산업화로 인해 공장 노동자들을 수용하기 위한 주택 단지가 건설되었고, 1901년 주택법은 공중 보건 문제와 도시를 비위생적인 곳으로 인식하는 우려를 반영했습니다.
• 교통량 증가 (세기 중반): 1920년에서 1930년 사이에 자가용 수가 6배 증가하고, 1950년에서 1960년 사이에 개인 및 상업용 차량이 3배 증가하는 등 자동차 교통량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 전후 주택 부족 (세기 중반):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주택 파괴와 전후 베이비 붐으로 인해 수십 년 동안 만성적인 주택 부족을 겪었습니다. 이는 "공공의 적 1호"로 지정될 정도였습니다.
• '이웃' 개념의 등장 (전후): 도시에 대한 사회적 접근 방식으로 '이웃' 개념이 발전하여, 도시 생활의 "혼란스럽고, 기계적이며, 물질주의적이고, 동질화하는" 특성을 완화하고자 했습니다.
• 대규모 개발에 대한 비판과 반도시적 정서 (1960년대 후반~1970년대): 비즐머(Bijlmer)와 호흐 카타리나(Hoog Catharijne)와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서 소규모 개발과 사회성이 도시 디자인의 새로운 화두가 되었습니다. 도시는 비인간적인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정글로 인식되었고, 시골이나 마을과 같은 환경을 선호하는 반도시적 정서가 확산되었습니다.
• 교외화 및 도시 중심부 쇠퇴 (1970년대~1980년대): 1970년대에는 대도시 인구가 감소하고 중소 도시로의 인구 유출이 나타났습니다. 1980년대에도 이러한 교외화는 계속되었고, 정부의 집중 정책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이 도심을 떠났습니다.
• 도시의 재발견과 공공 안전 우려 (1980년대): 1980년대에는 도시가 다시 유행하게 되었고, 디자이너와 정책 입안자들은 대도시를 모델로 삼았습니다. 이 시기에는 공공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졌습니다.
• 시민 참여와 저항 (1960년대 후반~1970년대): 대규모 재개발 계획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커졌고, 암스테르담의 "지하철 폭동"과 같은 풀뿌리 시위는 기존 도심의 철거 및 재개발에 대한 저항을 보여주었습니다.
• 사회적 형평성 강조 (1970년대): 시위 세대의 문화와 사회주의적 이상은 도시 중심부가 저소득층을 포함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주요 경제적 변화:
• 산업 전환 및 경제 부흥 (세기 초): 고용 구조가 농업에서 무역, 서비스, 산업으로 변화하며 도시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1895년경 시작된 경제 부흥은 사무 공간 수요를 촉발했습니다.
• 경제 위기와 실업 (1920년대~1930년대): 1929년 경제 위기는 개발을 저해했고, 대공황 시기에는 실업자를 위한 공원 및 숲 조성과 같은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습니다.
• 전후 경제 회복과 번영 (1950년대): 1950년대 초 네덜란드 경제는 전전 수준을 회복했으며, 이후 번영이 점차 가속화되었습니다.
• 산업 분산 정책 (1950년대): 이셀호수 간척을 통한 새로운 토지 확보와 산업 분산 정책으로 기업들이 란트스타트(Randstad) 외곽에 정착하도록 장려되었습니다. 로테르담 항구의 유로포트(Europoort) 확장은 경제적 동기에 의해 추진되었습니다.
• 민간 개발자의 부상 (1960년대): 정부가 공간 계획을 주도했던 수십 년간과 달리, 1960년대에는 브레데로(Bredero)와 즈볼스만(Zwolsman)과 같은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가 등장했습니다.
• 상업 중심의 개발 (1990년대): VINEX 지구 개발에서는 시장이 더 이상 정부가 아닌 상업에 의해 좌우되면서 재정적 마진이 줄어들었고, 도시 중심부의 재개발은 주로 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했습니다.
주요 제도적 변화:
• 주택법 (1901년) 및 도시 계획의 초기 제도화:
◦ 인구 1만 명 이상 또는 5년간 인구 20% 이상 증가한 지방자치단체에 확장 계획 수립을 의무화했습니다.
◦ 정부로부터 유리한 대출을 제공하여 대규모 주택 블록 건설을 재정적으로 가능하게 했습니다.
◦ 위생 조치, 불량 주거지 개선, 주택과 공장의 분리 등을 규정했습니다.
◦ 1921년 개정된 주택법에 포함된 용도 지구 계획(zoning plan)은 확장 계획에 더 엄격한 틀을 부여했습니다.
• 도시 디자인의 전문화 및 독립 학문으로서의 성장 (세기 전반):
◦ 20세기 초에는 도시 계획이 특정 전문직의 전유물로 여겨지지 않았지만, 1910년대 이후 전문화가 시작되었습니다.
◦ 1918년 네덜란드 주택 연구소(Nederlandsch Instituut voor Volkshuisvesting) 설립 (이후 도시 계획 포함).
◦ 국제 도시 계획 회의, 별도의 시립 도시 계획 부서 설치, 도시 디자인 전문 건축 사무소의 등장.
◦ 통계 데이터 및 인구, 교통, 경제 예측을 출발점으로 삼는 과학적 기반이 강화되었습니다. 궁극적으로 도시 계획 업무의 본질이 실용적인 문제 해결이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옳았음을 입증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 지역 계획 및 국가 계획의 제도화 (1920년대~1930년대):
◦ 1924년 암스테르담 국제 가든 시티 및 도시 계획 협회 회의를 계기로 지역 계획의 전통이 시작되었습니다.
◦ 1931년 주택법 개정으로 지역 계획이 공식적인 법적 지위를 얻었으며, 지방자치단체는 공동 위원회를 구성하여 지역 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1930년대에 국가 계획에 대한 논의가 구체화되었고, 독일 점령 기간 중 국가 계획 정부 기관(Government Agency for the National Plan)이 설립되었습니다.
◦ 암스테르담 종합 확장 계획(AUP, 1934년)은 기능주의 도시 계획의 가장 완벽한 사례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 전후 재건 및 확장 계획 (1940년대~1950년대):
◦ 전쟁 중인 1940년부터 전후 재건 계획이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 로테르담의 비테빈(Witteveen) 계획(1940년)은 1946년 C. 반 트라(C. van Traa)의 로테르담 재건 및 확장 기본 계획(Basisplan voor Wederopbouw en Uitbreiding van Rotterdam)으로 대체되어 더 큰 규모의 요소와 건축적 표현의 자유를 허용했습니다.
◦ 공간 계획은 개발을 통제하는 것을 넘어 개발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변화했습니다.
◦ 1958년 "서부와 나머지 네덜란드"(Het Westen en Overig Nederland)는 최초의 국가 공간 계획 의도였으며, 인구와 산업의 균등한 분산과 란트스타트의 혼잡 방지를 목표로 했습니다.
• 국가 공간 계획 시스템의 정립 (1960년대):
◦ 1960년 첫 번째 공간 계획 보고서(Nota inzake de ruimtelijke ordening)가 발표되었고, 1965년 공간 계획법이 발효되었으며, 1966년 두 번째 공간 계획 보고서가 이어졌습니다.
◦ 이는 법적, 행정적 기반을 갖춘 전국적인 공간 계획 시스템을 구축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 "집중 분산(clustered dispersal)" 정책은 집중과 분산 사이의 절충안으로 제시되었습니다.
◦ 1960년대 초에는 인구 증가가 주요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환경 문제(공기, 소음, 방사선)가 공간 계획에 포함되었습니다.
• 성장 중심지 정책 및 유연한 계획 도구 (1970년대):
◦ 1972년 "성장 중심지(growth centres)" 정책이 도입되어 알크마르, 알메러, 조테르메어 등 특정 지방자치단체가 도시에서 유출되는 인구와 증가하는 인구를 흡수하도록 지정되었습니다.
◦ 지방자치단체가 토지 이용 계획의 세부 사항을 일반적인 윤곽으로 승인받은 후에야 채울 수 있도록 허용한 1965년 공간 계획법 조항은 "블레켄플란(vlekkenplan)"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유연한 계획 도구로 작용했습니다.
• 집중 정책과 도시 재생 (1980년대):
◦ 1988년 네 번째 공간 계획 보고서(Fourth Report on Spatial Planning)는 "집중(concentration)" 정책을 채택하고 여러 도시를 "도시 노드(urban nodes)"로 지정했습니다.
◦ 란트스타트 도시들 사이의 농업 지역인 그린 하트(Green Heart)는 추가 개발 금지 구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 도시 재생은 원래 용도를 잃은 산업 및 항만 지역 재개발을 포함했으며, 기존 요소를 통합하려고 시도했습니다.
◦ 공공 공간의 디자인이 중요한 과제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 VINEX 지구와 공간 계획의 반성 (1990년대):
◦ 1990년 네 번째 공간 계획 보고서의 보충 자료인 VINEX 보고서(Fourth Report Extra)가 발표되었으며, 이는 주거 지역 개발을 위한 부지를 지정했습니다.
◦ "오그웨어(orgware)" 개념은 도시 디자인 계획에 영향을 미치는 행정적, 정치적 요인을 강조했습니다.
◦ 전후 도시 디자인에 대한 수정과 "도시 복구" 개념이 등장했으며, 비즐머의 고층 아파트 단지 철거와 같은 급진적인 변화도 있었습니다.
◦ 세기 말에는 국가 공간 계획 정책이 국가 내 모든 개발을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졌고, 도시 디자인 분야는 자신의 위치와 "만약 그렇다면?"이라는 가설적 질문을 탐구하는 반성의 시기를 가졌습니다. 도시 디자인은 20세기 동안 독립된 학문으로 발전하여 전문화되고 제도화되었습니다
질문2 : 다양한 도시 계획 개념과 건축 양식은 어떻게 발전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는가?
다양한 도시 계획 개념과 건축 양식은 20세기 네덜란드에서 지속적인 도시화, 계획 도구의 증가, 그리고 공간 계획의 규제 강화와 함께 발전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도시 설계는 독립적인 학문으로 성장했습니다.
다음은 시대별 주요 개념과 양식의 발전 및 상호 영향입니다:
1. 1900-1910년대: 도시 건설 (City Building) 및 가든 시티 (Garden City)의 등장
• 도시 건설 (City Building): 20세기 초반 네덜란드 도시 계획을 지배한 접근 방식으로, H.P. Berlage가 "유용성 문제"를 미학적으로 민감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거리, 광장, 공공 정원의 일관된 공간 구성과 대규모 주거 블록의 연속적인 파사드(정면)를 통해 미학적인 도시 경관을 추구했습니다. 건축가들이 도시 계획의 주요 행위자였으며, 독일 이론가들, 특히 C. Sitte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 영향: 주택법(1901)으로 대규모 주거 블록 건설이 재정적으로 가능해졌고, 슬럼가 개선 및 공중 보건 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졌습니다. 주택과 공장의 분리가 도시 개발 계획의 목표가 되었으나, 실제로는 20세기 후반에야 실현되었습니다.
◦ 양식: 형식주의(대칭, 축, 바로크 양식)와 회화적 양식(불규칙한 조화, 중세 도시) 두 가지 사조가 있었으며, Berlage는 바로크 모델을 선호했습니다.
◦ 초기 도시 문제: 경제 부흥으로 인한 사무실 공간 수요 증가와 상업 집중으로 도시 중심에서 주거 기능이 밀려나고, 새로운 교통 통로와 대로 확장이 이루어졌습니다.
• 가든 시티 (Garden City) 개념: 1910년대에 네덜란드 도시 계획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E. Howard의 이상은 자급자족적인 동심원형 신도시(중심부, 주거지, 녹지대, 산업지대, 농업지대)였으나, 네덜란드에서는 완전한 도시가 아닌 교외 주거 단지로 변형되어 "아르카디아적 도시성"을 추구했습니다.
◦ 영향: 풍부한 녹지와 전원적인 분위기를 가진 "마을 같은 주거 단지"가 건설되었고, 공장 관리자들이 노동자들을 위한 "산업 마을"을 건설하기도 했습니다 (예: Philips Village).
◦ 모순의 공존: M.J. Granpré Moliére는 가든 시티의 전원적인 고요함과 현대 도시 생활의 현실을 조화시키려 했고, "가든 시티 건설"과 "기념비적인 타운하우스 건설"이 모두 현대 시대에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 도시 블록 (City Block) 양식: 대도시에서는 Berlage의 암스테르담 남부 2차 계획(Plan Zuid)과 같이, 대량 생산된 주거 단위가 대규모 주택 블록을 형성하는 "기념비적인 타운하우스 건설"이 나타났습니다. 이 시기에는 건축가들이 도시 계획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건축이 건물 집합체로서 도시의 거리와 광장을 형성한다고 보았습니다.
2. 1920-1930년대: 지역 도시 (The Regional City)와 기능 도시 (The Functional City)
• 새로운 건축 표현: 1920년대에는 길고 연속적인 파사드로 둘러싸인 거리와 광장 대신, 독립형 주거 블록, 테라스 하우스, 고층 아파트 및 사무용 건물이 열린 공간에 둘러싸인 도시 형태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타났습니다. 계획 방식도 상세한 마스터플랜에서 광범위한 윤곽을 그리는 방식으로 전환되었습니다.
• 지역 계획 (Regional Planning): 도시 문제가 지방 자치 단체의 경계를 넘어선다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지역 계획이 부상했습니다. J.M. de Casseres는 도시보다 큰 규모의 계획을 지칭하는 "계획학(planology)"이라는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1931년 주택법 개정으로 지역 계획이 법적 지위를 얻었고, 인구 증가, 교통량 증가 등 대규모 효과를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 영향: 교통 문제 해결을 위해 고속도로망에 중점을 두었고, 도시 및 지역 수준에서 연결성을 최적화하고 교통 흐름을 관리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 기능 분리: 주거와 업무의 기능 분리가 중요한 과제가 되었으며, 종종 녹지 공간이 이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방사형 또는 동심원형 모델). 1921년 주택법 개정에 포함된 "구역 계획(zoning plan)"은 토지 사용에 대한 더 엄격한 틀을 제시했습니다.
• 기능 도시 (The Functional City): 1930년대에는 CIAM(근대 건축 국제 회의)에서 주도한 "기능 도시"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이는 도시 생활을 주거, 업무, 레크리에이션, 교통이라는 네 가지 주요 기능으로 축소하고, 이들을 공간적으로 엄격하게 분리하는 급진적인 접근 방식이었습니다.
◦ 양식: "빛, 공기, 공간"이라는 슬로건 아래 개방형 개발, 충분한 신선한 공기와 햇빛 확보를 강조했습니다. 이를 위해 주거 단지는 남북 축에 맞춰 배치되고, 그림자를 피하기 위해 충분한 간격으로 떨어져야 했습니다. 이 원칙은 저가 노동자 계층 주택을 위한 암스테르담 공모전 출품작(예: G. Rietveld, W. van Tijen)에서 개방형 연립 주택(open row housing)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 전통주의와의 논쟁: 기능주의자들은 개방형 개발과 역동적인 도시 경관을 선호한 반면, 전통주의자들은 가든 빌리지의 낭만적인 성격을 옹호하며 대립했습니다.
3. 1940-1950년대: 전후 재건축 (Post-war Reconstruction)과 열린 도시 (The Open City)
• 개방형 도시 형태의 대두: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막대한 피해는 도시 설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전쟁 중 재건 계획이 수립되었고, 전후 재건은 거의 항상 갱신(renewal)을 의미했으며, 과거의 폐쇄적인 도시 형태 대신 개방형 도시 형태가 지배적이 되었습니다.
◦ 영향: 개방성과 규모의 확대가 특징이었으며, 로테르담 재건에서 가장 명확하게 나타났습니다. W.G. Witteveen의 초기 계획은 기존 도시의 전반적인 모습을 복원하려 했으나, 1946년 C. van Traa의 "로테르담 재건 및 확장 기본 계획"은 더 큰 요소들을 사용하여 건축적 표현에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하며 개방형 도시 형태를 완전히 수용했습니다.
◦ 지역적 특성: 전쟁 피해 지역에서는 전통적인 건축 양식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요소를 결합하여 이전의 규모를 복원하려는 접근 방식이 나타났습니다. 미델버그 재건은 물리적 재건보다는 도시의 "분위기"를 중시하며 회화적인 도시 경관을 강조했습니다.
◦ 주택 부족과 이웃 개념: 전후 주택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주거 단지(예: Slotermeer, Zuidwijk)가 건설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이웃(Neighbourhood) 개념"이 중요하게 대두되었는데, 이는 사회적 접근 방식을 통해 도시를 작은 이웃으로 세분화하여 혼돈스러운 현대 도시 생활에서 개인이 소속감을 느끼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 자동차 중심 도시 계획: 1950년대의 "열린 도시"는 자동차 교통에 이상적으로 적합했습니다. 고속도로망이 확장되었고, 도시는 자동차에 적응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 광역 계획과 기능 재편: IJsselmeerpolders와 같은 대규모 간척지를 통한 새로운 정착지 개발과 산업 분산 정책이 시행되었고, 랜드스타트(Randstad)의 혼잡을 줄이기 위해 인구와 산업의 고른 분산을 목표로 하는 국가 공간 계획(Het Westen en Overig Nederland, 1958)이 수립되었습니다.
• 재개발 및 슬럼 청산: 오래된 도심 지역의 재개발 및 슬럼 청산이 표준적인 관행이 되었는데, 이는 종종 전면적인 철거와 새로운 건물 건설을 동반했습니다. 그러나 마스트리흐트의 스톡스트라트(Stokstraat) 재개발처럼 역사적 구조를 보존하려는 예외도 있었습니다.
4. 1960-1970년대: 메가스트럭처 (Megastructures)와 사회적 도시 (The Sociable City)
• 메가스트럭처의 등장: 1960년대는 도시 자치구 규모의 대규모 건축 단지, 즉 "메가스트럭처"(예: 위트레흐트의 Hoog Catharijne)가 나타난 시기였습니다. "건축-도시주의(architecture-urbanism)"라는 용어가 생겨날 정도로 건물과 도시를 결합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 영향: 국가 계획이 공식적으로 도입되었고(공간 계획법 1965), "군집 분산(clustered dispersal)" 정책이 시행되어 무질서한 교외 확산을 막기 위해 성장을 제한된 수의 지방 자치 단체에 집중시켰습니다.
◦ 기능 분리의 극단화: 암스테르담의 Bijlmermeer 개발은 "내일의 도시"로 불리며, 주거지, 지구, 이웃이 명확하게 구분되고, 자동차 교통과 다른 교통 수단의 엄격한 분리가 이루어졌습니다. 전통적인 거리는 계획 도구로서 사라지고, 공원 같은 환경에 벌집 모양의 고층 아파트 단지가 배치되었습니다.
• 사회적 도시 (The Sociable City)로의 전환: 1960년대 후반부터 Bijlmer와 Hoog Catharijne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비판이 증가하면서, 소규모 개발과 사회성이 도시 설계의 새로운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 반도시적 정서: 도시는 "비인간적인 시멘트와 아스팔트 정글"로 인식되었고, 전원적이고 마을 같은 환경이 이상으로 떠올랐습니다. 고층 건물은 비선호되었고, "주거 공간(woonerf)" 개념이 인기를 얻었습니다.
◦ 교통 완화: 넓고 직선적인 도로는 구불구불한 길로 대체되었고, 자동차 이용은 엄격히 제한되거나 완전히 금지되었습니다 (우회 도로, 교통 순환 계획). 자전거 이용이 장려되기 시작했습니다.
◦ 성장 거점 (Growth Centres) 정책: 대도시 인구 감소와 교외화에 대응하기 위해 "성장 거점" 정책(1972)이 도입되어 알크마르, 알메르, 레리스타트 등 중소 도시가 인구 증가를 흡수하도록 지정되었습니다.
◦ 도시 형태의 다양화: 레리스타트는 전통적인 중심-교외 구성이었지만, 1971년에 시작된 알메르 개발은 여러 핵을 가진 "다핵 도시(polynucleated city)"로 설계되어 각 핵이 고유한 중심과 특징을 가지도록 했습니다. 알메르-하벤은 1970년대 소규모 도시 설계의 순수하고 완벽한 예시로 평가받습니다.
◦ 블로켄플랜 (Vlekkenplan): 1965년 공간 계획법으로 인해 토지 이용 계획의 세부 사항이 모호하게 표시되는 "블로켄플랜"이 발생했는데, 이는 조정되지 않은 도시 계획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변화하는 조건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계획 도구로도 작용했습니다.
◦ 도시 재생 (Urban Renewal): 도심에 사람들이 다시 살 수 있도록 하는 "이웃을 위한 건설" 정책이 등장했습니다. 암스테르담의 지하철 시위와 Nieuwmarkt 지역의 재건은 소규모, 저렴한 주거 임대 주택을 우선시하며 기존 도시 구조를 존중하는 신중한 도시 재생의 예시였습니다.
5. 1980-1990년대: 콤팩트 도시 (The Compact City)와 새로운 확장 지구
• 도시의 재발견과 콤팩트 도시: 1980년대에는 도시가 다시 유행하며, "마을 같은 도시주의" 대신 "세련된 도시주의"가 강조되었습니다. 고층 건물과 주변 블록(perimeter block)의 재발견은 이러한 사고방식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 명확한 도시 형태: 암스테르담의 IJ-plein과 Venserpolder 개발은 개방형 연립 주택과 주변 블록을 바탕으로 한 명확한 도시 형태를 보여주었습니다. 주변 블록의 인기는 공공 안전에 대한 우려와도 관련이 있었습니다.
◦ 자율적 도시 계획: C. Weeber는 도시 설계가 건축에 흡수되어 희석되었다고 비판하며, 공공 공간의 질은 건축보다 2차원적인 개발 계획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Venserpolder는 1970년대 주거 공간의 개념과 대조적으로 단순하고 균일한, 엄격한 도시 블록과 직선 도로를 특징으로 합니다.
◦ 주제별 도시주의 (Thematic Urbanism): 아머스포르트의 Kattenbroek과 같은 프로젝트에서는 기하학적 형태의 구조가 "가을" 또는 "안뜰의 길"과 같은 주제별 건축과 결합되어 건축가들에게 일반적인 디자인에서 벗어난 영감을 주었습니다.
◦ 맥락의 중요성: 디자인의 정당성은 기존 풍경이나 도시 구조와의 관계에서 찾아졌고, 공간적 연속성과 장소의 역사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게 인식되었습니다.
◦ 콤팩트 도시 개념: 고밀도와 다양한 용도를 가진 도시가 활기를 불어넣고, 지역 경제를 강화하며, 이동성 증가를 억제하는 데 바람직하다는 "콤팩트 도시" 개념(1980년대)이 고층 건물 건설의 재유행과 연결되었습니다.
◦ 집중 정책: 제4차 공간 계획 보고서(1988)는 "도시 거점(urban nodes)" 지정을 통해 도시 내부 또는 근접 지역에 개발을 집중시키는 정책을 채택했습니다.
◦ 도시 재생 (Urban Regeneration): 오래된 이웃의 도시 재생과 더불어, 용도를 잃은 산업 및 항만 지역의 재개발이 새로운 과제로 부상했습니다 (예: 암스테르담 Oostelijk Havengebied, 로테르담 Kop van Zuid).
◦ 공공 공간의 재조명: 파리와 바르셀로나의 사례에서 영감을 받아 도시 내 공공 공간(광장, 거리, 공원)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부활했습니다. 조경 건축가들이 전통적인 공원 영역을 넘어 도시 공공 공간 설계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6. 1990-2000년대: 새로운 확장 지구 (New Expansion Districts)와 도시 복구
• VINEX 지구: 1990년 제4차 공간 계획 보고서 보충판(Fourth Report Extra, VINEX)이 발표되면서, 주거 지역 위주로 개발될 "VINEX 지구"가 지정되었습니다.
◦ 유연한 마스터플랜과 테마: 레이드스헤 라인(Leidsche Rijn)과 같은 대규모 VINEX 계획은 "조직 소프트웨어(orgware)"(행정 및 정치적 요인)를 결정적인 요소로 보는 유연한 마스터플랜을 특징으로 했습니다. 때로는 주거 유형, 재료, 파사드 순서, 공공 공간 디자인, 식재 유형에 대한 지침과 같은 "테마 계획"이 추가되었습니다.
• 도심 재개발 및 복구: 도시 중심부는 급진적인 재개발을 겪었습니다. 로테르담의 철도 고가도로 철거 및 Schouwburgplein 재설계, 헤이그의 Utrechtse Baan 건설, 위트레흐트의 Hoog Catharijne 재개발 등이 예시입니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종종 이전의 도시 계획 개입을 "복구"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주로 경제적 활성화가 동기였습니다.
• 새로운 전통주의: 전후 교외 지역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암스테르담 Bijlmer의 고층 아파트 일부를 철거하고 저층 개발로 대체하는 것이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입니다. Slotermeer의 Noorderhof 지역(Krier 설계)은 AUP의 개방형 구조를 벗어났습니다. VINEX 지구에서도 가든 시티 원칙과 1930년대 빌라 스타일 건축을 결합한 "새로운 전통주의" 요소가 발견되었습니다.
• 계획의 성숙과 성찰: 이 시기에는 국가 공간 계획이 모든 개발을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지고, 도시 설계 분야는 "만약 ~라면?" 시나리오와 가상 도시를 탐구하며 성찰의 시기를 가졌습니다. 이는 도시 설계가 독립적이고 전문화된 학문으로서 성숙했음을 보여주는 징후로 평가되었습니다.
요약하자면, 20세기 네덜란드의 도시 계획 개념과 건축 양식은 초기 도시 성장과 위생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도시 건설"**과 **"가든 시티"**에서 시작하여, 기능 분리, 교통 효율성을 강조하는 **"기능 도시"**와 **"열린 도시"**로 발전했습니다. 이후 대규모 프로젝트인 "메가스트럭처" 시대를 거쳐, 시민들의 비판과 요구에 따라 **"사회적 도시"**라는 개념 하에 소규모 개발, 공동체 중심, 역사적 존중의 가치가 재조명되었습니다. 1980년대에는 도시의 가치가 재발견되면서 **"콤팩트 도시"**와 **"도시 재생"**이 중요해졌고, 1990년대에는 "VINEX 지구" 개발과 함께 기존 도시 구조를 복구하고 재활성화하려는 움직임, 그리고 도시 계획 자체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지며 다양한 개념과 양식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진화했습니다
질문3 : 도시 디자인 분야에서 정부의 역할과 대중의 참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했는가?
도시 디자인 분야에서 정부의 역할과 대중의 참여는 20세기 네덜란드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크게 변화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규제와 주도권의 전환, 그리고 시민들의 목소리가 점차 중요해지는 과정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정부의 역할 변화:
• 20세기 초 (1900-1920년대): 제한적 규제에서 광범위한 계획으로 발전
◦ 초기에는 1901년 주택법(Housing Act)에 따라 인구 1만 명 이상 또는 5년간 인구 20% 이상 증가한 지방자치단체에 도시 확장 계획 수립이 의무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법은 도로, 수도관, 건물 지정에만 적용되었고, 토지 용도에 대한 세부 규정은 사유 재산 개발업자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이유로 꺼려졌습니다. 주택법은 유리한 대출을 제공하여 대규모 주택 건설을 가능하게 했고, 공중 보건 개선과 빈민가 철거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일부 시의회는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주택 단지를 건설하기도 했습니다.
◦ 1921년 주택법 개정으로 **조닝 계획(zoning plan)**이 도입되어 확장 계획에 비해 훨씬 엄격한 틀을 제시하며 토지 할당이 더욱 정밀하게 규정되었습니다.
• 1930년대 (지역 계획 및 기능주의 도시): 계획의 제도화 및 전국적 확장 시도
◦ 1931년 주택법 개정으로 **지역 계획(regional planning)**이 공식적인 법적 지위를 얻었으며, 지방자치단체들이 공동 위원회를 구성하여 지역 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인구 증가, 교통량 증가 등 광범위한 효과를 고려하기 위함이었습니다.
◦ 정부는 경제 위기 시기에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공공 공원 및 숲 조성과 같은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를 활용했습니다.
◦ 1930년대에는 **국가 계획(national planning)**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어 1939년 "Het Nationaal Plan"이라는 책이 출판되었고, 독일 점령 기간(1940-1945)에는 국토 계획을 위한 정부 기관이 설립되었습니다.
• 2차 세계대전 이후 (1940-1960년대): 재건과 개발 주도, 국가 계획의 확립
◦ 전쟁 후 재건 계획은 기존 및 새로운 공식 구조 내에서 추진되었으며, 정부는 공간 계획을 통해 개발을 자극하는 역할을 점차 확대했습니다.
◦ 1950년대에는 전후 심각한 주택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거의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새로운 주택 단지를 건설했습니다.
◦ 1960년 **최초의 공간 계획 보고서(First Report on Spatial Planning)**가 발행되고 1965년 **공간 계획법(Spatial Planning Act)**이 발효되면서, 법적, 행정적 기반을 갖춘 전국적인 공간 계획 시스템이 확립되었습니다. 정부는 인구 및 번영의 균등한 분배를 목표로 했으며, "공공의 관심"을 자극하고 정부와 사회 간의 "생산적인 상호작용"을 촉진하려 했습니다.
• 1970년대 이후 (사회적 고려 및 유연성, 그리고 복잡성): 대중 참여 수용 및 경제적 동기
◦ 1970년대에는 지방자치단체가 토지 이용 계획의 세부 사항을 총괄적인 승인 이후로 미룰 수 있게 되면서 **'빌켄플란(vlekkenplan, 얼룩 계획)'**이라는 유연한 계획 도구가 나타났습니다.
◦ 1988년 **제4차 공간 계획 보고서(Fourth Report on Spatial Planning)**는 "집중 정책"을 채택하여 개발이 도시 내부 또는 근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 1990년대에는 **VINEX(제4차 보고서 추가)**라는 광범위한 주택 건설 프로그램이 추진되었는데, 이 시기에는 시장이 정부보다는 상업에 의해 좌우되면서 공간 및 건축적 다양성이 재정적 제약에 의해 제한되기도 했습니다.
◦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네덜란드의 "협의 문화(consultative culture)"는 긴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 협의, 환경 영향 보고서, 반대자들의 법적 절차를 특징으로 하지만, 이는 동시에 주요 공간 계획 실수를 방지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습니다. 20세기 말에는 국가 공간 계획이 모든 발전을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사라지면서 정부의 역할이 더욱 분산되고 복잡해졌습니다.
대중의 참여 변화:
• 20세기 초 (1900-1910년대): 제한적이고 비전문적인 참여
◦ 초기 도시 계획은 특정 전문 그룹의 전유물이 아니었음을 암스테르담 담 광장(Dam Square) 설계 공모전(1908)에서 "모든 네덜란드 국민에게 참여 개방"이라는 문구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상작들은 모두 건축가들의 작품이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부유층이 사적 주도로 도시 외곽에 '빌라 공원'을 조성하는 등의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 1910-1950년대: 간접적 사회적 요구 반영
◦ 도시 계획이 독립적인 학문으로 전문화되면서(예: 건축과 공학 분야의 주도권 논쟁), 대중의 직접적인 설계 참여보다는 전문가와 정부 주도의 계획이 일반화되었습니다.
◦ 2차 세계대전 후에는 **'이웃 개념(neighbourhood concept)'**이 등장하여 도시 주민들이 소규모의 질서정연한 커뮤니티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접근 방식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대중의 삶의 질에 대한 간접적인 고려였습니다.
• 1960년대 말-1970년대 (대중 저항과 적극적 참여): 도시 계획의 전환점
◦ 1960년대 말부터 빌머(Bijlmer)나 호흐 카타리나(Hoog Catharijne)와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비판이 증가했습니다.
◦ 특히 1960년대 후반에는 스힐더스바이크(Schilderswijk) 고층 주택 단지 계획 등 대규모 도시 재개발 계획에 대해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 높은 저항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 1970년대에는 "반도시적 사고방식(anti-urban mentality)"이 확산되면서 시골 같은 환경과 소규모 개발이 선호되었고, 고층 건물은 외면받았습니다.
◦ **"지하철 폭동(metro riots)"**으로 대표되는 암스테르담의 풀뿌리 운동은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기존 노동자 계층 지역의 철거 및 재개발 계획을 저지하고, 저렴한 임대 주택 위주로 기존 규모와 동일하게 재건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웃을 위한 건설"이 정부 정책으로 자리 잡은 것도 부분적으로는 지역 주민들의 요구 때문이었습니다. 도시 재생 사업에서 새로운 해결책이 지역 주민들의 저항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 1980-1990년대 (도시 재발견 및 협의 문화의 정착):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
◦ 1980년대에는 공공 안전에 대한 우려가 페리미터 블록(perimeter block)의 재부상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도시 재발견과 함께 공공 공간 설계에 대한 관심이 부활하여 광장, 거리, 공원 설계가 활발해졌습니다.
◦ 1990년대에는 대규모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네덜란드의 협의 문화(consultative culture)"**가 정착되어 정치적 의사결정, 협의, 환경 영향 보고서, 그리고 계획 반대자들의 법적 절차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참여가 특징이 되었습니다. 이는 느리지만, 주요한 계획 오류를 줄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 VINEX 지구 개발에서는 '오르그웨어(orgware)'라는 개념이 도입되어 행정 및 정치적 요인이 도시 설계 계획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정함으로써, 디자이너 외의 다양한 주체들의 영향력을 암시합니다
질문4 : 네덜란드에서 시도된 가든시티(Garden City)에 관해서 알려줘
네덜란드 도시 디자인에서 가든 시티(Garden City) 개념은 20세기 초반, 특히 1910년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이 개념은 영국의 에베네저 하워드(E. Howard)가 1898년에 저서 『투모로우: 진정한 개혁을 향한 평화로운 길 (To-Morrow: A Peaceful Path to Real Reform)』에서 제시했으며, 이 책은 1902년에 『내일의 가든 시티(Garden Cities of To-Morrow)』로 재출간되었습니다. 실제 가든 시티, 가든 빌리지, 가든 서버브 형태로 영국과 독일에서 구현된 사례들이 네덜란드에 실용적인 모델로 작용했습니다.
하워드의 가든 시티 원칙:
하워드는 도시의 과밀화와 무질서한 성장에 대한 해결책으로 가든 시티 개념을 개발했습니다. 그의 이상적인 가든 시티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 동심원 배열의 신도시: 3만 명을 넘지 않는 인구를 수용하며, 자급자족에 필요한 모든 편의 시설을 갖춥니다.
• 중심부: 계획의 심장부에 시민 센터가 위치합니다.
• 녹지 주거 지역: 시민 센터 주변에는 녹지가 풍부하고 넓은 주거 지역이 고리 모양으로 배치됩니다.
• 완충 녹지대: 주거 지역은 공원 지대로 둘러싸여 주택과 가장 바깥쪽 산업 지구 사이의 완충 역할을 합니다.
• 산업 지구: 가장 바깥쪽 고리에 산업 지구가 위치합니다.
• 농업 용지: 도시 경계를 넘어서는 추가적인 농업 용지 구역이 계획을 완성합니다.
• 자족성 및 확장 방지: 동심원 레이아웃은 도시에 자족적인 형태를 부여하고 더 이상의 무분별한 확장을 방지합니다.
하워드의 '가든 시티' 관련 자료
1. To-Morrow - A Peaceful Path to Real Reform by E. Howard (1898)
2. Garden Cities Of To-morrow by E. Howard (1902)
네덜란드에서의 수용과 변형:
네덜란드에서는 하워드의 원래 개념에 따른 "진정한" 가든 시티는 건설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워드의 **'아르카디아적 도시성(Arcadian urbanity)'**이라는 개념, 즉 목가적인 전원 도시의 이상이 열렬히 수용되었습니다.
• '돌의 도시(stone city)'에 대한 대안: 네덜란드 전역에서는 "돌의 도시"에 대한 대안으로 **"마을 같은 주거 단지(village-like housing estates)"**가 많이 생겨났습니다.
• 변형된 형태: 이러한 주거 단지들은 풍부한 녹지와 전원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하워드가 묘사한 가든 시티의 원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 완전한 도시가 아닌 단순한 교외 지역에 불과했습니다.
◦ 도시 외곽이 아니라 도시 내부 또는 인접 지역에 위치했습니다.
◦ 동심원 형태로 배치되지 않았습니다.
• 산업 마을(Industrial Villages): 일부 공장 관리자들은 자신의 직원을 위한 노동자 주택 단지를 "잎이 무성한 마을"의 모습으로 건설했습니다.
◦ 1910년대 주요 사례: 아인트호벤의 필립스 빌리지(Philips Village, K.P.C. de Bazel, W. Hanrath, J.G.J. de Jongh 설계), 렌쿰의 헤베아도르프(Heveadorp, J. Rothuizen 설계), 로테르담의 헤이플라트(Heyplaat, H.A.J. Baanders 설계), 위트레흐트의 엘링크바이크(Elinkwijk, K. Muller 설계). 헹엘로의 '트 란싱크('t Lansink, K. Muller 설계)는 스토크(Stork) 회사 직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 긍정적 및 비판적 시각: 이러한 산업 마을은 노동자들에게 다른 곳에서는 얻기 힘든 더 나은 생활 환경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노동 시간 외에도 경영진의 통제를 강화하여 불평등한 권력 균형을 강화한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또한, 공장 굴뚝 그림자 아래 지어져 전원적인 특성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가든 시티 개념의 논쟁과 지속성:
M.J. Granpré Moliére와 같은 디자이너들은 가든 시티의 전원적인 고요함과 현대 도시 생활의 현실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그는 가든 시티를 "조직적인 사회로부터의 도피"로까지 부르기는 어렵지만 그러한 "경향"은 분명히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가든 시티가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며, **"가든 시티 건설(garden city construction)"**과 함께 **"기념비적인 타운하우스 건설(monumental town house construction)"**이라는 두 가지 경향이 현대 사회의 "겉보기에 모순되는 모든 것들의 조합"을 반영하며 공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가든 시티 건설"은 대도시와 소도시를 불문하고 네덜란드 전역에서 나타났지만, "기념비적인 타운하우스 건설"은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 같은 대도시에 국한되었습니다.
가든 시티 개념은 네덜란드 도시 계획가들에게 거의 즉각적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실제로 이 개념에 기반한 첫 교외 지역이 건설된 것은 191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암스테르담 북부의 니우웬담(Nieuwendam)과 같은 가든 시티 전통에 뿌리를 둔 주택 단지들은 1930년대 중반까지 계속 건설되었습니다.
심지어 20세기 후반, 1990년대에 개발된 많은 VINEX 지구에서도 가든 시티의 원칙과 1930년대 빌라 양식 건축을 결합한 "새로운 전통주의(new traditionalism)" 요소들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가든 시티 개념이 20세기 네덜란드 도시 디자인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변용되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