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Urban Planning and Development in China and Other East Asian Countries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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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同济大学出版社
이 자료는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동아시아의 도시 계획과 발전 과정을 상세히 분석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전통적인중앙집권적 도시 구조가 일본과 한국의 수도 건설에 미친 유교적 및 공간적 영향을 주요하게 다룹니다. 역사적으로는성곽 도시와 무역 항구의 성장 과정을 살피고, 근대에 들어서구 열강의 침입과 식민 지배가 기존의 도시 질서를 어떻게 재편했는지 설명합니다. 또한 현대에 이르러상하이와 도쿄, 서울과 같은 대도시들이 겪은 급격한 산업화와 현대적 도시 계획 체계의 구축 과정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텍스트는정치 체제와 경제적 변화가 동아시아 특유의 도시 경관을 어떻게 형성해 왔는지 종합적으로 조명합니다.
Urban Planning and Development in China and Other East Asian Countries (2019) Springer - 18page
오복제란
고대 중국의 **오복제(五服, Wufu Order)**는 국가 전체를 5개의 중첩된 사각형 구역으로 나누어 관리하던 공간적 위계 질서를 의미합니다. 고대 문헌인 《상서·우공(尚书·禹贡)》에 기술된 이 체계에 따르면, 중국은 중앙에서부터 각각 500리(약 200km)씩 떨어진 다섯 개의 구역으로 구성된 사각형의 땅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오복제를 구성하는 5단계 구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전복(甸服, The Royal Domain): 가장 중심이 되는 구역으로, 황제와 왕실, 그리고 중앙정부의 본부가 위치하는 핵심 지역입니다.
2. 후복(侯服, The Noble Domain): 중앙정부 구역과 인접한 곳으로, 주로 지방 제후들의 성도가 위치했습니다.
3. 수복(绥服, Domain of Peace-Securing): 변방 지역의 정부 및 하위 위계의 도시들이 배치된 구역입니다.
4. 요복(要복, Domain of Restraint): 중앙정부에 귀속된 소수 민족이나 지방 세력의 거주지로, 중앙의 허가를 받아 정통 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5. 황복(荒복, Wild Domain): 가장 바깥쪽의 야만적인 지역으로, 주로 범죄자들을 유배 보내는 곳이었으며 도시 건설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오복제의 중요성 및 특징
• 도시 계획의 기준: 이 시스템은 도시가 오복제 내에서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해당 도시의 규모, 위계, 인구수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 중앙 집권적 질서: 오복제는 중앙의 황제권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문명화의 정도가 낮아진다고 보는 화이관(Sino-barbarian dichotomy)과 결합하여, 중앙 집권적인 정치 질서를 공간적으로 구현했습니다.
• 표준화된 도시 형태: 이러한 위계 질서 속에서 도시들은 사각형 형태와 격자형 도로망 등 주례(周禮)에서 규정한 표준 모델을 따르며 동아시아 전역의 도시 형태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시스템을 비유하자면, 오복제는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졌을 때 퍼져나가는 '동심원 형태의 파동'과 같습니다. 중앙에서 시작된 권력과 문명의 파동이 외곽으로 갈수록 점차 약해지며, 그 거리에 따라 각 도시가 누릴 수 있는 특권과 규모가 엄격히 제한되는 질서 정연한 체계였기 때문입니다.
이 문서는 동아시아, 특히 중국, 일본, 한국의 도시 계획 및 개발의 역사, 철학적 기반, 현대적 시스템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핵심적인 통찰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도시 형태는 음양오행, 풍수, 천인합일 사상 등 고대 중국 철학의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이는 방어벽으로 둘러싸인 방형(方形) 도시 구조, 남북을 가로지르는 중심축, 엄격한 격자형 도로망, 그리고 《주례(Rites of the Zhou)》와 같은 예법에 기반한 계층적 공간 배치로 나타났으며, 2000년 이상 중국과 주변국의 수도 계획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둘째, 동아시아 각국은 공유된 문화적 기반 위에서 독자적인 도시 발전 경로를 개척했다. 중국은 통일 제국의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하에 수도 중심의 위계적 도시 시스템을 발전시켰고, 송나라 시대에는 상업혁명으로 인해 폐쇄적인 리방제(里坊制)가 붕괴되고 개방적인 도시 구조가 등장했다. 일본은 중국의 수도 모델을 수용하면서도 봉건 시대에 영주의 성을 중심으로 한 독특한 성곽 도시(조카마치, 城下町)를 발전시켰다. 한국은 중국의 도시 이론을 받아들이면서 평지의 계획도시와 방어용 산성(山城)이 결합된 '이중 핵심' 구조를 특징으로 삼았다.
셋째, 19세기부터 시작된 서구 열강과 일본의 식민주의는 동아시아의 전통적 도시 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조계지와 식민 도시는 철도, 항만, 서양식 공공건물 등 근대적 기반 시설을 도입하여 도시의 현대화를 촉진했으나, 동시에 전통적 공간 구조를 파괴하고 비대칭적인 발전을 야기했다.
넷째, 현대 동아시아 국가들은 각기 다른 도시 계획 시스템을 운영한다. 중국은 《도농계획법》에 기반한 강력한 중앙집권적, 하향식 계획 체계를 유지하며 국가 주도의 대규모 개발을 추진한다. 반면 일본과 한국은 보다 분권화된 다층적 계획 시스템을 통해 도시 성장을 관리하며, 특히 수도권 과밀화 억제와 균형 발전이 중요한 정책 목표로 다루어진다.
마지막으로, 현대 동아시아는 창장 삼각주와 같은 거대 도시권(메가시티 리전)의 부상을 목격하고 있다. 이들 지역은 국가 경제의 핵심 동력으로 기능하며, 고속철도와 같은 광역 교통망을 통해 긴밀하게 연결된 네트워크형 공간 구조로 발전하고 있다.
제1부: 동아시아 도시 형태의 철학적 및 역사적 기반
고대 중국 철학의 영향
동아시아의 고전적 도시 형태는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 우주 질서와 사회적 위계를 구현하는 상징적 장치였으며, 그 기반에는 고대 중국 철학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음양오행(Yin-Yang and Wuxing) 및 풍수(Fengshui): 고대 중국인들은 우주의 모든 것이 음(Yin)과 양(Yang)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측면의 상호작용으로 구성된다고 믿었다. 이 원리는 물, 불, 쇠, 나무, 흙의 오행(Wuxing) 이론과 결합하여 도시의 입지 선정과 공간 배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풍수(Fengshui)는 이러한 철학을 실용적으로 적용한 것으로, 도시나 건물이 '기(氣)'의 흐름이 좋은 곳에 자리 잡아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원리였다.
•천인합일(Integration of Heaven and Man): 하늘의 질서를 인간 세계에 구현하려는 천인합일 사상은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개념을 낳았다. 이는 도시를 방형으로 설계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단(Temple of Heaven)과 같은 건물은 둥근 형태로 짓는 건축 양식으로 이어졌다. 도시는 남북을 관통하는 중심축을 기준으로 대칭적으로 배치되었으며, 동서남북 각 방향은 청룡(동), 백호(서), 주작(남), 현무(북)라는 사신(四神)이 수호한다고 여겨졌다.
•예법과 계층 구조(Ritual and Hierarchy): 도시 계획은 《주례(Rites of the Zhou)》와 같은 고대 예법서에 명시된 기준을 따랐다. 화이질서(華夷秩序, 중화와 오랑캐의 구분)는 문명화된 중심부와 주변부를 구분하는 세계관을 반영했으며, 수도를 중심으로 500리 간격으로 5개의 동심원적 구역(왕기-후복-수복-요복-황복)을 설정한 오복제(五服制, Wufu Order)는 각 도시의 규모, 인구, 행정 등급을 결정하는 위계적 공간 질서의 기반이 되었다.
고대 중국 도시의 진화
철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한 중국의 고전 도시는 수천 년에 걸쳐 역동적으로 진화했다.
•초기 제국의 수도(Capitals of Early Empires): 진나라의 수도 함양(Xianyang)과 한나라의 장안(Chang'an)은 통일 제국의 권위를 상징하는 계획도시였다. 이들 도시는 높은 토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내부에는 격자형 도로망과 궁궐, 행정 시설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었다. 특히 한나라 장안은 외부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중국 역사상 최초로 외성(Outer City)을 건설했다.
•리방제(Li-Fang System)와 그 붕괴: 당나라 시대에는 수도 장안에 리방제(里坊制)라는 폐쇄적인 주거 구획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각 '방(Fang)'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밤에는 문을 닫아 통행을 통제함으로써 치안 유지와 주민 통제를 용이하게 했다. 그러나 송나라 시대에 상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이러한 엄격한 구획 시스템은 붕괴되었다. 수도 카이펑(Kaifeng)에서는 자유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주거지와 상업지가 혼합된 개방적인 도시 구조가 나타났다.
•후기 제국의 수도(Capitals of Later Empires): 몽골 제국인 원나라의 수도 대도(Dadu, 현 베이징)는 《주례》의 원칙에 따라 이전보다 더 엄격한 바둑판 모양의 격자형으로 계획되었다. 도시 중심에는 종루와 고루를 세워 시간과 공간의 기준점으로 삼았다. 명나라와 청나라는 대도를 계승하여 수도 베이징을 건설했으며, 자금성을 중심으로 한 제국의 위계적 질서를 강화했다. 이 시기 베이징의 특징적인 주거 형태인 골목길 '후통(胡同)'과 사합원(四合院) 구조가 형성되었다.
경제 성장이 도시 구조에 미친 영향
중국 제국의 경제 발전, 특히 상업과 수공업의 성장은 도시의 기능과 형태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상업 도시의 발흥: 송나라 이후 리방제가 붕괴되면서 상업 활동이 활발해졌고, 대운하와 해안선을 따라 새로운 상업 도시들이 번성했다. 양저우(Yangzhou), 취안저우(Quanzhou), 광저우(Guangzhou) 등은 국제 무역항으로서 페르시아, 아랍 상인들이 거주하는 국제도시로 성장했다.
•위소제(Wei-Suo System): 명나라는 북방의 몽골과 동쪽의 왜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국경 지역에 위소(衛所)라는 군사 도시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도시들은 병사들이 주둔하며 농사를 짓는 자급자족형 방어 기지였으나, 점차 국경 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하여 톈진(Tianjin)과 같은 주요 도시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제2부: 동아시아 주요 국가의 도시 개발 특성
일본의 도시 개발
•중국 모델의 수용: 일본은 7세기 다이카 개신(Taika Reforms)을 통해 중국의 행정 시스템과 도시 건설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8세기에 건설된 수도 헤이조쿄(平城京, 나라)와 헤이안쿄(平安京, 교토)는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본떠 만든 전형적인 격자형 계획도시였다.
•성곽 도시(조카마치, Jōkamachi)의 발달: 중국, 한국과 달리 일본은 중앙집권적 통일 국가가 붕괴된 후 오랜 봉건 시대를 겪었다. 이 시기에는 각 지역 영주(다이묘)의 성(城)을 중심으로 한 성곽 도시, 즉 조카마치(城下町)가 일본의 대표적인 도시 형태로 발전했다. 조카마치는 방어 시설이 집중된 영주의 거주 공간과 사무라이 계층의 주거지, 그리고 상공인들이 사는 조닌(町人) 구역으로 명확히 구분되었다.
•근대화와 산업화: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급속한 서구화와 산업화를 추진했다. 수도가 된 에도(도쿄)를 비롯해 오사카, 요코하마 등 주요 도시들은 공업 중심지로 변모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도쿄 수도권 계획: 제2차 세계대전 후 폐허가 된 도쿄는 강력한 복구 계획을 통해 재건되었다. 1950년대부터 시작된 일련의 수도권 계획들은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산업 집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심의 기능을 주변 위성도시로 분산시키는 '다핵 분산형' 구조로의 전환을 목표로 했으며, 이는 오늘날 거대 도쿄 수도권의 기틀이 되었다.
한국의 도시 개발
•중국 모델과 독자적 특성: 한국의 고대 도시 역시 중국의 도시 계획 이론과 풍수사상의 영향을 받아 건설되었다. 그러나 한반도의 산이 많은 지형적 특성과 잦은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평지에 건설된 방어 성곽 도시(읍성)와 인근 산에 축조된 방어용 산성(山城)이 결합된 '이중 핵심(double-cored)' 구조가 발달한 것이 특징이다. 수원 화성(Hwaseong)은 이러한 한국적 성곽 도시의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의 역사와 현대화: 1394년 조선의 수도가 된 서울(한양)은 중국의 수도 계획 원칙에 따라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고 궁궐과 종묘사직, 격자형 도로망을 갖춘 계획도시로 건설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도시 구조가 근대적으로 재편되었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급격한 인구 증가와 경제 성장을 겪으며 주변 지역으로 확장되어 오늘날의 거대 수도권을 형성했다. 2000년대 청계천 복원 사업은 서울의 도시 환경을 개선한 대표적인 프로젝트다.
•평양의 도시 계획: 평양은 고구려의 수도였던 고대 도시로, 역시 산성을 갖추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군수 산업 기지로 이용되었으며,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된 후 소련의 도시 계획 모델에 따라 재건되었다. 현재의 평양은 김일성 광장을 중심으로 넓은 도로와 기념비적인 대형 건축물들이 축을 따라 배치된 사회주의 도시의 특징을 보여준다.
제3부: 20세기 중국의 도시화와 현대 도시 계획
식민주의와 근대화의 영향
•서구 열강의 조계지: 19세기 아편전쟁 이후 톈진, 상하이 등 중국의 주요 항구도시에는 서구 열강의 조계지(foreign settlements)가 설치되었다. 이곳에는 철도, 전신, 서양식 병원과 은행 등 근대적 기반 시설과 건축물이 들어서며 도시의 현대화를 이끌었으나, 동시에 전통적 도시 질서를 파괴하고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일본의 식민 도시 건설: 일본은 한국과 중국 동북 지역(만주)을 식민 지배하면서 대규모 도시 건설을 추진했다. 특히 만주국의 수도로 계획된 창춘(長春, 신징)은 100만 인구를 목표로 한 방사형과 격자형이 결합된 근대적 계획도시로 건설되었다.
1949년 이후의 도시화 단계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중국의 도시화는 세 단계를 거쳤다.
1.초기 단계 (1949–1957): 제1차 5개년 계획 기간 동안 소련의 원조와 계획 모델에 따라 내륙과 서북 지역에 156개의 대규모 공업 프로젝트와 새로운 공업 도시를 건설하는 데 집중했다.
2.변동기 (1958–1977): 대약진 운동의 실패와 문화대혁명의 혼란 속에서 도시 계획은 사실상 중단되었고, 도시 경제는 침체되었다. 도시 인구를 농촌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등 비정상적인 '역도시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3.지속 발전기 (1978–현재):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이 시작되면서 중국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의 도시화를 경험했다. 특히 동부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도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수많은 새로운 도시들이 생겨나고 거대한 도시군이 형성되었다.
창장 삼각주 도시군과 상하이 개발
•중국 최대의 도시화 지역: 창장(양쯔강) 삼각주 지역은 중국에서 도시화율이 가장 높고 경제적으로 가장 발달한 지역이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난징, 항저우 등 주요 도시들이 고속철도와 고속도로망으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다핵 방사형'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 지역은 중국 전체 GDP의 1/4 이상을 창출하는 핵심 경제권이다.
•상하이의 발전: 1991년 푸둥(浦東) 신구 개발을 기점으로 상하이는 세계적인 도시로 재도약했다. 대규모 기반 시설 투자와 산업 구조 고도화를 통해 금융, 무역, 물류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상하이의 2020 마스터플랜은 기존의 단핵 구조에서 벗어나 '다축(multi-axes), 다층(multi-layers), 다핵(multi-cores)'의 다중심적 공간 구조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제4부: 동아시아의 현대 도시 계획 시스템 비교 분석
국가별 계획 시스템 개요
•중국 (China): 《도농계획법》을 최상위 법률로 하는 강력한 하향식, 계층적 계획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계획은 국가 도시 시스템 계획, 성(省)급 도시 시스템 계획, 도시/진(鎭) 마스터플랜, 상세 계획 순으로 수립되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계획의 수립과 집행을 주도한다.
•일본 (Japan): 도시계획법에 근거하여 "도시계획구역(Urban Planning Area)"을 지정하고, 이를 다시 개발을 촉진하는 "시가화촉진구역"과 개발을 억제하는 "시가화조정구역"으로 나누는 것이 특징이다. 토지 이용을 규제하는 용도지역제(Zoning)가 계획 시스템의 핵심을 이룬다.
•한국 (South Korea): 국토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국토기본계획부터 시작하여 수도권과 같은 광역 계획, 그리고 각 도시의 기본계획과 관리계획으로 이어지는 다층적 시스템을 운영한다.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과밀을 억제하고 국토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한 정책 과제다.
사례 연구: 상하이와 시카고의 계획 시스템 비교
중국의 상하이와 미국의 시카고는 도시 계획 시스템의 제도적 차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제도 구조(Institutional Structure): 상하이는 시 정부와 구 정부로 구성된 '2급 정부'와 시-구-가도(街道)로 이어지는 '3급 행정' 체계의 위계적 구조를 가진다. 반면 시카고는 시의회, 구청, 각종 위원회, 지역 커뮤니티 조직 등 다수의 행정 주체들이 수평적으로 얽힌 다원적, 네트워크적 구조를 보인다.
•계획 과정(Planning Process): 상하이의 도시 계획가는 정부의 의사결정을 돕는 기술 관료로서 하향식 계획 과정 내에서 활동하며, 대중 참여는 제한적이다. 반면 시카고의 계획가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정치인, 개발업자, 주민)들을 설득하고 그들의 이익을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계획 과정은 정치적 협상과 토론의 성격을 띤다.
•결론(Conclusion): 두 도시는 모두 계획을 통해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상하이는 관료적 효율성과 국가 주도의 목표 달성을 중시하는 반면, 시카고는 민주적 절차와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의 합의 형성을 중시하는 접근 방식을 취한다
NotebookLM이 추천하는 질문을 통해 알아본 책의 내용
질문1 : 고대 동아시아 도시 계획과 사회 질서의 중심 철학은 무엇인가?
고대 동아시아의 도시 계획과 사회 질서를 관통하는 중심 철학은 유교(Confucianism) 교리와 중앙 집권적 행정 체제, 그리고 자연과 우주의 질서를 반영한 고대 중국 철학의 결합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소스에 근거한 구체적인 핵심 요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유교적 위계질서와 대칭 구조
동아시아의 고전적 도시들은 유교 교리에 의해 도시 배치와 사회 질서가 지배되었습니다.
• 권력의 시각화: 엄격한 계층적 사회 시스템을 표현하기 위해 남북 중앙축을 중심으로 한 대칭적 레이아웃을 채택했습니다. 이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인 질서 아래 있음을 보여줍니다.
• 중앙 집권적 권위: 황제나 왕의 궁전은 북쪽 끝에 배치되어 남쪽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통치자의 권위와 권력을 상징했습니다.
• 사회적 계급 반영: 유교적 가치관에 따라 선비(관료), 농민, 장인, 상인의 순서로 사회 계층이 정의되었으며, 이러한 위계는 도시 내 거주 구역의 분리와 시장에 대한 엄격한 통제로 이어졌습니다.
2. 천인합일 사상과 우주적 질서
동아시아인들은 도시가 우주의 법칙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개념에 따라 도시는 주로 정사각형 형태로 설계되었습니다.
• 음양오행(Yin-Yang and Wuxing): 모든 사물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음양오행 이론은 도시의 공간 관계와 건물 구조를 결정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각 방향은 고유한 신수(청룡, 백호, 주작, 현무)와 연결되어 도시의 수호적 의미를 더했습니다.
• 별자리와의 일치: 일부 수도는 하늘의 별자리(예: 북극성, 남두육성)를 모방하여 배치되었는데, 이는 통치자의 지배권이 신성한 것임을 입증하려는 의도였습니다.
3. 풍수지리(Fengshui)와 입지 선정
도시의 위치는 '기(Qi)'가 잘 흐르는 명당에 선정되었습니다.
• 이상적인 환경: 북쪽으로는 산이 있어 찬바람을 막아주고(Yang), 남쪽으로는 강이 흘러 비옥한 토지를 제공하는(Yin) 입지를 최적으로 여겼습니다.
• 조화와 균형: 풍수 이론은 인간과 국가, 자연, 그리고 하늘의 법칙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도록 돕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4. 주례(Rites of Zhou)에 기초한 표준화
고대 문헌인 《주례》의 '고공기'는 동아시아 도시 계획의 고전적 표준이 되었습니다.
• 정형화된 도시 모델: 도로망을 바둑판 모양(Grid pattern)으로 짜고, 궁전 앞에 조정을 두고 뒤에 시장을 배치하는(전조후시) 원칙 등이 확립되었습니다.
• 문화적 통일성: 이러한 표준 모델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수도 건설(예: 서울, 교토, 나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어 동아시아 문화권의 통일된 도시 경관을 형성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고대 동아시아의 도시는 단순히 거주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유교적 예법과 우주적 철학이 물리적으로 구현된 상징물이었습니다.
이를 비유하자면, 고대 동아시아의 도시는 **"지상에 투영된 거대한 천체 지도"**와 같습니다. 별자리들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정연하게 운행하듯, 도시의 모든 도로와 건물은 중앙의 통치자를 중심으로 질서 있게 배치되어 우주의 조화로운 법도를 지상에서도 실현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질문2 : 동아시아 도시 계획에서 유교적 철학과 중앙 집권적 정치 시스템은 어떻게 반영되었는가?
동아시아 전통 도시 계획에서 유교적 철학과 중앙 집권적 정치 시스템은 도시의 형태, 공간 구조, 그리고 사회적 질서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동아시아 도시 계획에 반영된 구체적인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권위와 질서의 상징: 남북 중앙축과 대칭 구조
동아시아의 고전적 도시들은 통치자의 권위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남북 중앙축을 중심으로 한 대칭적 레이아웃을 채택했습니다.
• 궁전의 배치: 황제나 왕의 궁전은 도시의 가장 북쪽 끝에 배치되었습니다. 이는 남쪽을 향해 앉아 제국을 다스리는 통치자의 권위와 중앙 집권적 힘을 상징합니다.
• 정사각형 도시 형태: '천원지방(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이라는 고대 철학에 따라 도시는 주로 사각형으로 건설되었으며, 이는 우주의 질서가 지상에 구현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2. 유교적 위계질서와 사회 조직의 반영
도시 계획은 유교가 강조하는 엄격한 위계질서와 예법을 공간적으로 표현했습니다.
• 공간 분리: 도시 내 구역은 신분에 따라 엄격히 구분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당나라의 '이방(里坊) 제도'는 거주지와 시장을 담장과 성문으로 분리하여 통치자가 도시 생활을 시공간적으로 완전히 통제할 수 있게 했습니다.
• 의례적 건축물: 유교 학교와 공자묘와 같은 의례 시설은 도시 내 중요한 고정 위치에 건설되었으며, 이는 교육과 예법을 중시하는 유교적 가치관을 반영합니다.
• 직업적 위계: 사농공상의 위계에 따라 관료와 학자가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했으며, 상업 활동과 시장은 정부의 엄격한 감시를 받는 특정 구역에 한정되었습니다.
3. 천인합일 사상과 풍수지리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중시하는 철학은 도시의 입지 선정과 환경 설계에 반영되었습니다.
• 풍수(Fengshui) 이론: 도시는 북쪽의 산이 찬바람을 막아주고 남쪽의 강이 용수와 기름진 땅을 제공하는 곳에 위치해야 한다는 원칙을 따랐습니다.
• 음양오행: 도시의 도로는 동서남북 사방으로 설계되었으며, 각 방향은 고유한 신수(청룡, 백호, 주작, 현무)와 도덕적 의미를 부여받아 조화를 이루도록 계획되었습니다.
4. 동아시아 전역으로의 확산
이러한 중국의 중앙 집권적 행정 시스템과 도시 모델은 인근 국가로 전파되어 동아시아 문화권의 통일성을 형성했습니다.
• 한국: 조선의 한양(서울)은 풍수지리와 《주례(周禮)》의 '고공기' 원칙에 따라 궁전과 사직단, 종묘를 배치한 전형적인 유교 도시입니다.
• 일본: 나라(헤이조쿄)와 교토(헤이안쿄)는 당나라 장안성을 모델로 삼아 바둑판 모양의 도로망과 남북 축을 기반으로 건설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동아시아의 도시는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 아니라, 천상의 질서와 지상의 통치권, 그리고 유교적 도덕관이 하나로 결합된 정교한 상징 체계였습니다.
이 시스템을 비유하자면, 동아시아의 도시는 '거대한 거울'과 같습니다. 이 거울은 하늘의 법도(우주적 질서)와 땅의 통치자(중앙 권력)의 의지를 도시라는 평면에 그대로 비추어, 모든 백성이 그 질서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며 살아가도록 설계된 정교한 장치였기 때문입니다.
질문3 : 중국, 일본, 한국의 고대 도시 구조와 방어 체계는 어떠한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가?
중국, 일본, 한국의 고대 도시 구조와 방어 체계는 고대 중국의 도시 계획 이론인 **주례(周禮)**와 유교적 질서, 풍수지리 사상을 공유하며 발전해 왔습니다. 하지만 각국의 지형적 특성과 사회적 구조에 따라 방어 체계와 도시 공간 구성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점을 보입니다.
1. 도시 구조 및 방어 체계의 공통점
• 중국 모델의 영향: 동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의 도성 건설 모델을 채택하여 격자형 도로망(Grid pattern), 남북 중앙축, 대칭적 건물 배치를 기본 구조로 삼았습니다.
• 유교적 계급 질서: 도시는 경제적 중심지이기 이전에 정치적 중심지였으며, 왕궁은 주로 북쪽에 배치되어 통치자의 권위를 상징했습니다.
• 성벽과 성문: 모든 도시는 원칙적으로 **성벽(City Wall)**으로 둘러싸여 보호되었으며, 사방에 성문을 두어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습니다.
• 의례 및 교육 시설: 도시 내 특정 위치에 유교 학교, 종묘, 사직단 등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 시설을 배치했습니다.
• 구조: 중국의 도성은 거대한 성벽 안에 왕궁, 행정 기구, 시장, 거주지가 모두 포함된 형태였습니다.
• 방어: 성벽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요새 역할을 했으며, 성벽 밖에는 **해자(Moat)**를 깊게 파서 적의 침입을 방어했습니다.
• 특징: 모든 시민이 성벽 안에서 함께 보호받는 구조였으며, 시대가 흐를수록 흙으로 쌓은 성벽을 벽돌로 보강하여 방어력을 높였습니다.
일본: 성곽 도시(Castle Town)와 신분 격리
• 구조: 중세 이후 일본의 도시는 영주가 거주하는 **성(Castle)**과 상인·수공업자가 거주하는 **성하마을(Jōkamachi)**로 나뉩니다.
• 방어: 영주와 무사 계급은 해자와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견고한 성 안에 거주하며 보호받았으나, 일반 서민들이 사는 마을은 별도의 방어 시설이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특징: 일본 특유의 다층 구조인 **천수각(Tenshu)**은 높은 돌기단 위에 세워져 감시탑과 권위의 상징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습니다.
한국: 산성(Sanseong)과 평지성의 이중 구조
• 구조: 한국은 평상시 거주하는 평지 도성과 전쟁 시 대피하여 항전하는 산성을 함께 운영하는 **이중 구조(Double-cored structure)**를 특징으로 합니다.
• 방어: 지형적 이점을 활용하여 산봉우리를 잇는 성벽을 쌓았으며, 적의 침입 시 왕과 백성이 산성으로 들어가 장기전을 벌이는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 특징: 산악 지형이 많아 성벽 건설에 **석재(Stone)**를 광범위하게 사용했으며, 풍수지리에 따라 북쪽에는 산을 두고 남쪽에는 강을 면하는 배산임수 형식을 철저히 따랐습니다.
요약 비교
구분
중국
일본 (에도 시대 이후)
한국
성벽 구조
도시 전체를 성벽으로 봉쇄
영주의 성만 견고하게 방어
평지성과 산성의 결합
방어 대상
모든 도시 거주자
주로 지배 계급(무사)
국왕과 백성 공동 대피
주요 재료
판축(다진 흙), 벽돌
거대 석축 기단 및 목조 타워
견고한 석재
공간 특징
엄격한 좌우 대칭 및 격자
성을 중심으로 한 다핵 구조
지형을 고려한 불규칙한 성곽
이들의 관계를 비유하자면, 중국의 도시는 모든 가족을 한 울타리에 넣고 지키는 대저택과 같고, 일본의 성곽 도시는 귀족들만 견고한 탑 안으로 대피하는 요새화된 영주 저택, 한국의 방어 체계는 마을 근처 산에 튼튼한 대피소를 따로 마련해 둔 집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4 :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와 근대화 과정은 동아시아 전통 도시 체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서구 문명의 유입과 식민 지배는 2000년 넘게 유지되어 온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도시 체계를 근본적으로 전복시켰습니다. 서구 열강의 침입에 대해 동아시아 국가들은 처음에는 저항했으나, 각국의 근대화 방향에 따라 서로 다른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서구 열강의 영향과 근대화 과정이 동아시아 전통 도시에 미친 주요 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도시 형태 및 구조의 변모
• 외국인 거류지와 조계의 등장: 전통적인 성곽 도시 내부에 서구식 외국인 거류지나 조계가 설치되면서 전통적인 사회 질서가 파괴되었습니다. 상하이, 톈진, 광저우 등 주요 항구 도시에는 서구식 부두, 창고, 상업 거리가 조성되어 새로운 도시 이미지를 형성했습니다.
• 물리적 구조의 현대화: 철도, 버스 등 공공 교통수단과 병원, 은행, 역과 같은 공공 건물이 들어섰으며, 전등, 위생 시스템, 통신망 등 근대적 인프라가 도입되었습니다.
• 공간의 파편화와 사회적 단절: 식민지 도시는 현지인과 외국인을 분리하며 사회적 단절을 심화시켰고, 서구 세력에 의한 경제적 통제는 전통적인 가치관과 비즈니스 모델의 쇠퇴를 초래했습니다.
2. 식민지 지배를 통한 공간 왜곡 (한국과 중국의 사례)
• 일본의 식민 지배와 철도: 일본은 한국과 중국 동북부 지역에 철도를 건설하여 군사적 침략과 자원 수탈의 교두보로 활용했습니다. 평양과 같은 도시는 일본의 대중국 전쟁을 위한 병참 기지 및 군사 중심지로 변질되었습니다.
• 전통적 상징물의 파괴: 서울에서는 일본이 경복궁 앞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우고 남산에 신사를 건립하는 등, 풍수지리적 전통 구조를 의도적으로 파괴하여 민족적 자존감을 훼손했습니다.
• 인구 구조의 변화: 일본의 식민 지배 기간 동안 한국 내 주요 도시에 대규모 일본인 이민자가 유입되어 도시 인구 구조가 크게 변화했습니다.
3. 국가 주도의 근대화 노력
• 중국의 양무운동: 19세기 후반 중국은 서구 기술을 도입하여 군사 공업을 육성하고 근대적 학교와 철도, 통신망을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도시 행정 시스템이 근대적인 정부 기관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일본은 에도를 도쿄로 개칭하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부를 수립했으며, 서구 시스템을 모델로 한 국가 은행, 군대, 우편, 교육 체계를 확립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도쿄는 아시아에서 가장 진보된 근대 도시로 급성장했습니다.
• 서울의 근대화: 19세기 말 서울은 전등, 전차, 수도, 전화 및 전신 시스템을 동시에 갖춘 동아시아 최초의 도시 중 하나가 되었으며, 도로 확장과 위생 시설 개선 등 대대적인 현대화가 진행되었습니다.
4. 경제 체제의 전환
• 조약 항구의 역할: 개항된 조약 항구들은 서구 세력의 거점인 동시에 근대 기술과 사회적 가치(언론의 자유, 법치주의 등)를 수입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 산업화와 인구 집중: 근대적 공업의 발전은 도시의 노동 분업을 세분화하고 고등 교육 및 의료 서비스와 같은 새로운 산업을 육성했으며, 이는 대규모 인구 유입으로 이어져 도시의 활력을 증대시켰습니다.
요약하자면, 서구 열강과 식민 지배는 동아시아 도시들에 서구적 현대성을 이식하는 동시에, 전통적인 공간과 문화를 식민지적 필요에 맞게 재편하거나 파괴하는 이중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동아시아의 전통 도시는 마치 **"오래된 정원이 최신식 공장과 상업 지구가 결합된 복합 단지로 강제 리모델링된 것"**과 같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원의 아름다움은 일부 훼손되었지만, 현대적인 편리함과 새로운 생산 방식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