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Arabs - A 3,000-Year History of Peoples, Tribes and Empires (2019)
bus3332025. 8. 12. 08:36
"아랍인 - 3천년의 민족, 부족, 제국사" 발췌문 검토
작성일: 2023년 10월 27일 작성자: [귀하의 이름/부서] 출처: 팀 매킨토시, "아랍인 - 3천년의 민족, 부족, 제국사" (2019)
1. 서론: '아랍' 정체성의 복잡성과 기원
매킨토시의 저서는 이슬람 이전 시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아랍인의 복잡한 역사와 정체성을 탐구한다. 저자는 아랍 역사를 이슬람의 출현에만 국한하는 일반적인 관점에 도전하며, 훨씬 더 오래된 뿌리와 지속적인 테마를 강조한다.
'샤브(Sha’b)'의 이중적 의미: 아랍어로 '샤브'는 "수집, 연합; 그리고 또한 분리, 분열, 또는 불일치... 인류의 국가, 민족, 인종, 또는 가족..."이라는 상반된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이는 아랍 정체성의 본질적인 이중성과 역사를 관통하는 연합과 분열의 순환을 암시한다. 두개골의 봉합선(샤브)이 뼈(카빌라, 즉 부족)를 만나게 하면서도 분리시키는 것에 비유된다.
이슬람 이전의 역사적 연속성: 대부분의 아랍 역사서는 이슬람에서 시작하지만, 저자는 이슬람 이전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역사가 현재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한다. "과거는 언제나 현재에 존재한다." 시리아 시인 니자르 까바니는 아랍의 영원한 과거를 "밤낮으로 당신을 삼키는 모래시계"에 비유한다.
2. 핵심 테마와 아이디어
2.1. 연합과 분열의 순환 (The Cycle of Unity and Disunity)
아랍 역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연합과 분열 사이의 끊임없는 순환이다. 이슬람이 한때 아랍인들을 단결시켰지만, 그 통일은 오래가지 못했다.
부족적 분열의 지속성: 이슬람 출현 이후에도 "근본적인 부족적 분열은 결코 치유되지 않았다." 무함마드의 죽음 이후 많은 부족들이 다시 독립과 반목으로 돌아섰다. 아랍 부족들은 혈연으로 뭉쳐 있었고, 이는 외부 세력에 의해 조작되기도 했다. "제국주의자들은 확실히 분할하여 통치했지만, 그들은 대부분 오래된 분열에 쐐기를 박는 것이었다."
이븐 할둔의 '아사비야(‘Asabiyyah)' 이론: 14세기 역사가 이븐 할둔은 유목 부족이 '아사비야'(집단 연대감)로 단결하여 정착 국가를 정복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 모델을 제시했다. 그러나 약 3세대가 지나면 왕조의 에너지는 쉬운 생활로 인해 소진되고, 새로운 활기찬 유목민 왕조에 의해 무너진다. 이는 아랍 역사의 반복되는 패턴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하달(Hadari)'과 '바다위(Badawi)'의 이중성: '하달'(정착민, 문명)과 '바다위'(베두인, 유목민) 사회 시스템의 대조는 아랍 역사의 기본 틀이다. 유목민의 '습격(ghazw)' 제도는 부의 재분배 수단으로 기능했으며, 중앙집권적 국가 형성을 방해했다. 무함마드는 "정착민과 베두인 시스템의 요소를 결합하여 초기 이슬람 국가를 세우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2011년 민주화 혁명의 실패는 "정착민 시스템에 대한 '베두인' 시스템의 재강조"와 연관되어 있다.
2.2. 아랍 정체성의 형성 및 진화
'아랍'이라는 용어와 아랍 정체성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으며, 외부 세계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었다.
언어의 중심성: 아랍어는 아랍 정체성의 핵심 요소이며, 다른 정복들이 일어나기 전에 "아랍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아랍인의 첫 번째 정복이었다." "언어는 문화적 통일성을 부여했고, 정치적 통일성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그 통일성을 파괴했다." 아랍어는 "바다에서 걸프만까지" 아랍인들을 통합한다. 이슬람 시대에 아랍어는 통일된 문어체로 발전했으며, 행정 언어로 사용되면서 그 지위를 공고히 했다.
'아랍'의 초기 의미: 초기에는 '아랍'이 '사막 사람', '유목민'(바다위)을 의미했다. 이는 아시리아 및 남부 아랍 비문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랍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외부의 영향과 자기 정의: 아랍인들은 '아잠('ajam,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자, 즉 비아랍인)'과의 대조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화했다. "아랍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신성시할 정도로 사랑한다. 그들은 언어가 자신들을 지배하는 것을 언어의 힘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힘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비아랍인 학자들이 아랍 문화 전체로서의 아랍인 개념을 발전시키는 데 역설적으로 기여했다.
이슬람의 역할: 이슬람은 아랍인들에게 "국가 이데올로기이자 아랍 민족 영웅으로서의 무함마드"를 통해 통일성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슬람은 깊은 영적 경험으로 시작되었지만... 메디나에서의 초기 국가 형성 10년 동안에는 물질적 고려가 영적 고려보다 중요할 수 있었다."
2.3. 무함마드의 혁명과 그 유산
무함마드는 아랍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이슬람 국가를 수립하며 연합과 정치적 구조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말의 결집(gathering the word)': 무함마드는 "사람들의 말을 결집하여 만장일치를 이루고 모든 반대를 침묵시켰다." 이는 그 이전의 아랍 지도자들이 시도했던 목표였다.
카빌라(부족)를 넘어선 움마(Ummah): 무함마드가 세운 '움마'(공동체)는 혈연이 아닌 유일신 알라에 대한 충성을 기반으로 한 '초부족'이었다. "메디나의 이슬람 국가는 혈통이 아닌 종교를 기반으로 한 아라비아 역사상 최초의 사회 조직 시도였다."
습격(Raiding)의 정치적 이용: 메디나 국가의 부상에는 무함마드의 '습격 전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초기 이슬람 연대기들은 그의 무장 원정을 '가자위(kutub al-maghazi, 습격 서적)'라고 기록했다. 이는 "이슬람이 거의 즉시 군대를 얻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서의 힘: 무함마드는 아랍어 쓰기를 활용하여 멀리 떨어진 부족들과 소통하고 통제하는 도구로 삼았다. 쿠란은 "신성한 본성 외에도 아랍 문화의 통일된 언어를 만들었다."
2.4. 제국과 지배 (Dominance and Decline)
아랍 제국은 빠른 확장 이후 내부적 분열과 외부 세력의 도전을 겪으며 쇠퇴의 길을 걸었다.
정복의 동기: 초기 이슬람 정복은 "마음과 정신보다는 주머니와 지갑"에 더 관련이 있었다. 이슬람 확장은 경제적, 민족적 요인과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습격은 부를 재분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내부적 분열과 부족주의: 정복 이후 정착된 주둔 도시(암사르)에서 아랍인들은 "이슬람의 모든 암사르에서 아랍인들은 [이슬람 이전의] '무지 시대'보다 더 심한 경쟁과 반목 상태로 돌아갔다." 이는 이슬람이 강조한 '아랍인과 비아랍인의 평등'과 상충되는 '아랍 쇼비니즘'으로 이어졌다.
맘루크와 오스만 제국: 맘루크(노예 병사)와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는 아랍인의 정치적 권력을 상실하게 했다. "대부분의 아랍인에게 오스만인들은 명목상 이슬람 형제였지만, 항상 이방인이었다." 이 시기에 아랍 정체성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문화적 지속성: 정치적 쇠퇴에도 불구하고, 아랍어와 아랍 문화는 언어의 확산, 학문적 전통, 예술(특히 서예)을 통해 살아남았다. "그들은 제국을 잃었지만, 결국 그들의 문화는 승리했다."
2.5. 근대적 각성(Nahdah)과 현대의 도전
19세기 '나흐다'(아랍 각성)는 아랍 정체성을 재발견하려는 움직임이었지만, 새로운 형태의 분열과 도전에 직면했다.
언어의 역할과 이중성: '나흐다'는 아랍어의 방대한 보고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문어체 표준어(고아랍어)와 구어체 방언 간의 이중성은 지속되었다. "아랍어처럼 이중적인 혀는 사용자가 이중적인 사고를 하도록 만든다."
서구의 영향과 제국주의: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공과 수에즈 운하 건설 등 서구 제국주의는 아랍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고, 새로운 정체성 형성을 자극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분할 통치' 전략을 사용하며 아랍 지역에 국경선을 그었다. "선진적인 서구 열강들은 증기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범아랍주의의 부상과 좌절: 가말 압델 나세르의 범아랍주의는 아랍 세계를 통합하려는 시도였지만, 결국 실패했다. "나세르의 연합의 꿈은 끝났다. 그러나 훨씬 더 나쁜 일이 다가올 것이었다."
현대의 분열과 권위주의: 21세기 초 '아랍의 봄' 시위는 대중의 불만을 표출했지만, 권위주의 정권은 새로운 정보 기술을 활용하여 '말을 결집'하고 통제를 강화했다. 많은 아랍 국가들은 "공화국"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실제로는 "군주국"(데모나키)에 가까웠다. "자유는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유는 사람들이 쟁취하는 것이며, 사람들은 원하는 만큼 자유롭다."
과거의 반복: 저자는 현재의 분열과 폭력을 과거 아랍 역사의 반복으로 본다. "아랍의 봄은 지연되고 이제는 연기된 사춘기의 시작, '가부장적' 통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의 일부였다."
3. 결론: 현재와 미래의 전망
아랍의 역사는 '하달'과 '바다위'의 지속적인 대립, 연합과 분열의 순환, 언어의 중심성, 그리고 외부와 내부의 힘에 의해 형성된 정체성의 끊임없는 변화를 보여준다. 저자는 과거가 현재를 침범하고 있으며, 진정한 진보를 위해서는 과거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속되는 점유: "물리적인 아랍 땅은 오래된 점령 제국들로부터 되찾았지만; 아랍의 과거는 여전히 내부로부터 점령되어 있다."
역사 해석의 중요성: "아랍인만이 이 작업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역사를 발굴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파냈던 우물을 2,000년 동안 기다린 포워드의 마을 사람들처럼 시간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개인의 역할: 역사가로서의 저자 자신의 경험은 '후기 식민주의자'이자 '탈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을 제공하며, 아랍인들이 외부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NotebookLM 이 추천하는 질문을 통해 본 책의 주요 내용
질문1 : 아랍의 정체성은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해왔는가?
아랍의 정체성은 3,000년에 걸친 역사 동안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복잡하게 형성되고 변화해왔습니다. 이는 유목 생활 방식에서 제국 건설에 이르기까지, 언어, 종교, 사회 구조, 그리고 외부 문화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진화해왔습니다.
다음은 아랍 정체성이 역사적으로 형성되고 변화해 온 주요 단계와 특성입니다:
• 초기 유목민의 정체성 (고대):
◦ 초기 '아랍'은 '사막 사람들, 유목민'을 의미했으며, 아시리아인들은 그들을 '감독관이나 관리도 모르는 사막 멀리 사는 사람들'로 묘사했습니다.
◦ 정치적으로는 분열되어 있었고, 목축과 습격이 그들의 생활 방식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착 사회와 유목 사회는 상호 이익을 얻기도 했습니다.
• 정착 사회의 부상과 언어적 통합 (이슬람 이전):
◦ 하달(Hadar)과 바드위(Badawi)의 이원성: '하달'(정착, 문명화된 정치 사회)과 '바드위'(유목, 비정치적 사회)의 이분법은 기록된 아랍 역사 초기부터 존재했습니다. 이 둘의 관계는 단순한 대립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었습니다.
◦ 샤으브(Sha'b)와 카빌라(Qabilah):샤으브는 '집단, 연합' 또는 '분리, 분열' 그리고 '국가, 민족, 인종, 인류의 가족'을 의미합니다. 카빌라는 '부족'을 의미합니다. 꾸란에서는 인류가 '민족(샤으브)과 부족(카빌라)으로 창조되어 서로를 알게 하려 했다'고 언급하지만, 이 구절에는 '서로를 구별하다'는 이중적인 의미도 내포되어 있어, 단결과 분열의 가능성이 공존함을 보여줍니다.
◦ 사바인(Sabaeans)의 영향: 사바인들은 공유된 신(일마카) 숭배에서 비롯된 정치적 단결 개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이슬람의 통일 사상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시(詩)의 역할: 고대 아랍 시는 '대중 매체'였으며, 다양한 부족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단일 문화'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아랍 유목민의 이동성은 아랍어의 발전을 이끌었고, 이는 '아랍의 어머니'가 되어 '문화적 민족(Kulturnation)'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시인들은 부족의 선지자(카힌)와 같은 영적인 지위를 가졌으며, 그들의 언어는 강력한 힘을 지녔습니다.
• 이슬람 혁명과 새로운 정체성 (무함마드 시대):
◦ 이슬람을 통한 통일: 무함마드는 정착 사회와 유목 사회의 요소를 결합하여 초기 이슬람 국가를 세웠고, 이는 전례 없는 단결을 가져왔습니다.
◦ 꾸란과 언어의 신성성: 꾸란은 높은 아랍어로 계시되어 부족 아랍인들에게 메시지의 '초자연적 기원'을 확증했습니다. 무함마드는 자신을 선지자와 구별하며 '예언 이후에는 카힌(선지자)이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 부족 중심에서 움마(Ummah)로의 전환: 무함마드는 알라의 뜻에 기반한 '초권위'를 행사하며 전통적인 부족적 권위를 넘어섰습니다. 모든 부족민이 속하는 이슬람 공동체, 즉 '움마'의 개념이 정체성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 우마이야 왕조 시대 (아랍화와 정착화):
◦ 아랍어의 제도화: 압둘 말리크 칼리프의 행정 및 화폐 아랍어화는 아랍 문화의 지속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비아랍인들이 아랍어를 배우게 하고, 문법과 구문론 같은 아랍어 학문의 발전을 촉진했습니다.
◦ 하달-바드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 우마이야 왕조는 유목민과 정착민 양쪽의 생활 방식을 유지하며 균형을 이루려 했지만, 점차 아랍 문화는 유목 환경에서 도시 환경으로 이행하기 시작했습니다.
• 압바스 왕조 시대 (다문화주의와 정체성의 분리):
◦ 페르시아화: 압바스 왕조는 페르시아의 영향을 크게 받아 궁정 관습과 행정 방식이 페르시아화되었습니다.
◦ '아랍' 의미의 분리: 이 시대에 '아랍'이라는 용어의 의미는 '아랍어 사용자'(문화적/언어적 의미)와 '문명화되지 않은 유목민'(일반적인 의미)으로 분리되었습니다.
◦ 지적 발전과 변화: 압바스 시대는 아랍 지성사의 '가장 중요한 단계'였으며, 알-마문 칼리프는 고대 그리스 철학과 과학을 번역하고 연구하는 '지혜의 집'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후 알-무타와킬 시대에는 개인적인 해석(이즈티하드)이 금지되고, '모방(타클리드)'이 강요되면서 지적 탐구가 억압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 언어의 지속적인 역할: 높은 아랍어는 여전히 아랍 세계를 '대양에서 걸프까지' 통합하는 매개체였습니다. "우리 [아랍] 공동체는 다른 모든 공동체와 달리 땅에 사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 산다"는 말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 정치적 쇠퇴와 문화적 지속 (이후 시대):
◦ 비아랍 통치와 마드라사: 몽골 제국 멸망 후, 살주크 튀르크족과 맘루크족과 같은 비아랍 통치자들이 아랍 세계의 많은 부분을 지배했지만, 그들은 아랍 문화를 받아들이고 마드라사(이슬람 학교) 설립을 통해 아랍어 학습과 이슬람 학문을 장려하며 아랍 문화의 지속성을 보장했습니다.
◦ 슈우비야(Shu'ubiyyah) 운동: 이 시기에는 페르시아인과 같은 비아랍인들이 문학적 풍자를 통해 아랍인에 대한 문화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슈우비야' 운동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 근대 아랍 각성(Nahdah)과 범아랍주의:
◦ 언어적 재강조: 19세기 '아랍 각성' 운동은 아랍어 인쇄술의 발전과 함께 범아랍 민족주의의 확산을 가져왔습니다. 언어는 나세르주의와 바트주의에서 아랍 정체성의 핵심 요소로 재강조되었습니다.
◦ 단결의 이상과 현실: 나세르 대통령의 범아랍주의 운동은 '새로운 아랍 각성'으로 여겨졌지만, '단결은 잠시 붙잡혔던 신기루'와 같았으며, 지역적 정체성과 내부 갈등이 계속되었습니다.
• 현대 정체성의 도전:
◦ 역사적 이분법의 지속:바드위와 하달의 이분법은 현대에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이는 아랍 사회의 내부 갈등에 영향을 미칩니다.
◦ 수사학적 진실의 우위: 사실보다는 '수사학적 진실'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으며, 사회 변화를 위한 정보 기술이 '오정보 기술'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 '역사 속의 정거장': 아랍 세계는 '역사의 정거장에 갇힌 양들'처럼 과거의 반복되는 패턴과 전통의 권위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영원한 어제' 속에 살고 있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합니다.
이처럼 아랍의 정체성은 끊임없이 재정의되고, 때로는 모순적으로 발전하며, 단결과 분열의 지속적인 변증법 속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질문2 : 이슬람의 출현과 확산은 아랍 사회에 어떤 심오한 영향을 미쳤는가?
이슬람의 출현과 확산은 아랍 사회에 다방면으로 심오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정치, 사회, 문화, 언어, 경제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다음은 이슬람이 아랍 사회에 미친 주요 영향들입니다:
• 정치적, 사회적 통합:
◦ 예언자 무함마드는 이전에 분열되어 있던 아랍 부족들을 통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아라비아 전역의 부족들과 사람들을 "이슬람의 말씀 위에" 하나로 모았습니다.
◦ 전통적인 badawi (유목민)와 hadari (정착민) 사회의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무함마드는 두 시스템의 요소를 결합하여 초기 이슬람 국가를 세웠습니다. 이러한 결합은 그의 프로젝트 성공에 중요했으며, 정착민과 유목민 사이의 불안정한 균형을 이루어냈습니다.
◦ 새로운 공동체인 움마(ummah, 공동체)는 이전 메카의 범아라비아 네트워크를 계승했으며, 무함마드는 전통적인 부족 방목지를 '국유화'하여 공동체 전체의 사용을 위해 '알라의 것'으로 선언했습니다.
◦ 아사비야(ʿasabiyyah, 집단 연대)라는 개념은 부족 통합의 핵심이었습니다. 또한, 하블 알라(habl Allah, 알라의 단결시키는 계약)의 개념은 옛 사바(Saba) 문명에서 공유된 신을 숭배하는 정치적 통합의 개념을 계승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무함마드는 알라를 대신하여 최고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으며, 그의 권한에 대한 반대는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이전 부족 지도자들의 합의 기반 통치와는 대조적이었습니다.
• 언어 및 문화적 변혁:
◦ 아랍어의 격상 및 확산:
▪ 꾸란은 고대 아랍어를 '하늘과 같은 높은 수준'으로 격상시켰고, 아랍어는 '아랍인의 어머니'가 되어 다양한 부족들을 하나의 '문화적 정체성'으로 묶는 데 기여했습니다. 꾸란은 최초의 아랍어 서적이었으며, 8세기 초까지도 유일한 물리적 서적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꾸란의 계시가 "쓰는 것"과 "암송하는 것"을 동시에 강조함으로써, 글쓰기는 신성하게 영감을 받은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또한, 아랍어 문자는 소리와 동일하게 간주되어, 기록된 텍스트는 구술 기록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 우마이야 칼리프 압둘말리크 시대에 행정 및 화폐의 아랍어화가 이루어졌는데, 이는 꾸란만큼이나 아랍 문화의 지속적인 발전에 중요했으며, '기록 혁명의 두 번째 장'이었습니다. 이는 아랍어가 종교적 텍스트를 넘어 행정과 과학의 언어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 문법, 통사론 등 언어학 연구가 최초의 공식 아랍 과학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는 정부를 아랍어화하려는 우마이야 왕조의 노력으로 인해 비아랍인들이 아랍어를 배우면서 언어 분석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 시와 수사학:
▪ 이슬람 이전의 시는 대중 매체 역할을 했으며, 다양한 사람들을 위한 단일 문화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 무함마드는 초기 계시의 카힌(kahin, 선견자)적 성격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점차 그들의 운율 있는 언어에 대한 불쾌감을 표명하여 자신을 그들과 구별했습니다. 그는 "예언 이후에는 선견자(카힌)가 있을 수 없다"고 선언하며 그들의 전통을 끝내고 능가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란의 언어는 선견자들의 운율 있는 언어 및 시와 공유되는 고대 아랍어였습니다. 고대 아랍 수사학의 힘은 이슬람 이후에도 시와 전투에서 계속해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 정치적, 경제적 변화:
◦ 메카는 무함마드 이전에도 순례 중심지로서 경제적 번영을 누렸지만, 무함마드의 꾸란 중심 사상은 메카를 더욱 번성하는 순례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 이슬람의 확산과 함께 아랍 제국이 건설되었고, 수도는 메카에서 메디나로, 그리고 우마이야 왕조의 다마스쿠스, 압바스 왕조의 바그다드로 이동하며 정치적 중심지도 변화했습니다.
◦ 압바스 시대에는 바그다드가 광대하지만 이동 가능한 제국의 통제 및 통신 허브가 되었습니다.
◦ 점차적으로 와지르(wazir, 재상)가 제국 운영의 실질적인 책임을 맡게 되었으며, 특히 페르시아 바르마크 가문 출신 재상들이 이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종교적 변혁:
◦ 다신교에서 엄격한 **일신교(타우히드, tawhid)**로의 전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슬람 이전의 신들은 점차 그들의 힘을 잃어갔습니다.
◦ 꾸란은 알라의 영원한 말씀으로 여겨지며, 그 어떤 선행하는 텍스트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어졌습니다.
◦ 무함마드의 순나(sunnah, 관행)는 무슬림이 따라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었고, 이는 이슬람 공동체의 중요한 원칙이 되었습니다.
◦ 이슬람(islam, 복종)은 외적이고 공적인 사회정치적 영역과 관련이 있는 반면, 이만(iman, 믿음)은 내적이고 사적인 알라와의 개인적인 관계에 관한 것이라는 개념이 형성되었습니다.
이처럼 이슬람의 출현과 확산은 아랍 사회의 기반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고, 이는 이후 수세기 동안 아랍 문명과 정체성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질문3 : 아랍 세계의 분열과 통합은 언어, 문화, 정치적 역학 관계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아랍 세계의 분열과 통합은 언어, 문화, 그리고 정치적 역학 관계에 걸쳐 복잡하고 지속적인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역사 전반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며 아랍 세계의 정체성을 형성해 왔습니다.
1. 언어를 통한 분열과 통합 (Language: Division and Unity)
• 통합의 기반: 표준 아랍어와 꾸란
◦ 무함마드의 언어적 능력은 아랍인들을 통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꾸란(Qur’an)은 "암송"을 의미하며, 이 **고급 아랍어(high Arabic)**는 신성한 계시의 언어이자 아랍어 사용 지역 전체에 걸쳐 상호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언어로서 통일성을 제공했습니다.
◦ 초기 아랍인들의 유동성(mobility)은 여러 방언 간의 상호 차용을 통해 언어의 수준을 평준화하고 높였으며, 이는 **"아랍인의 어머니"**가 되는 아랍어를 탄생시켰습니다.
◦ 압드 알-말리크(Abd al-Malik)의 행정 아랍어화와 새로운 아랍어 주화 발행은 지속적인 아랍 문화의 토대가 되었으며, 꾸란에 이어 "서면 혁명의 두 번째 장"으로 기록될 만큼 중요했습니다. 이를 통해 아랍어는 행정 언어(lingua franca)로서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 마드라사(madrasahs)와 언어 연구: 살주크 투르크(Saljuq Turk)의 니잠 알-물크(Nizam al-Mulk)가 설립한 마드라사는 꾸란과 이슬람법을 가르치며 고급 아랍어 문법과 연구를 유지하고 전파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현대에도 아랍어 문법 교육은 과거 마드라사의 커리큘럼과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 **현대 표준 아랍어(Modern Standard Arabic)**는 여전히 고전 아랍어의 본질을 유지하며, 아랍 민족주의(Pan-Arabism) 운동에서 언어를 아랍인 정체성의 핵심 요소로 삼았습니다.
• 분열의 요인: 방언적 다양성과 이중성
◦ 초기 아랍어는 매우 다양하여 꾸란 어휘에 50가지 이상의 아랍어 방언이 기여했습니다. 이는 '사전'을 의미하는 아랍어 '카무스(qamus)'가 그리스어 '오케아노스(okeanos, 대양)'에서 유래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 방언의 다양성은 상호 이해 가능했지만, 정치적 통합은 어려웠습니다.
◦ 언어적 이중성(linguistic duality), 즉 공식적인 고급 아랍어와 일상 구어체 아랍어 간의 차이는 사용자들에게 "두 갈래의 마음"으로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습니다. 이는 정부 고위 관리의 부패를 비난하면서도 자신의 아내가 공무원으로서 '뒷돈'을 챙기는 것을 칭찬하는 이중적인 태도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 **슈우비야 운동(Shu'ubiyyah movement)**과 같은 문학적 움직임은 아랍인이 아닌 아랍어 사용자들(주로 페르시아인)이 아랍어 산문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음을 강조하며, 아랍 문화의 우월성에 도전했습니다.
◦ 현대 시위에서 사용된 "인민은 정권의 붕괴를 요구한다(Al-sha'b Yurid Isqat al-nizam)"와 같은 구호에서 'sha’b'(인민)와 'nizam'(정권/질서) 같은 단어는 전통적으로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며, 시위대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되거나 왜곡될 수 있는 양면성을 가집니다.
2. 문화를 통한 분열과 통합 (Culture: Division and Unity)
• 통합의 기반: 공유된 유산과 신념
◦ 구전 전통과 시(詩): 시는 고대부터 아랍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었고, 언어와 수사학의 "결정적인 기반"을 형성했습니다. 시인들은 부족을 초월한 영향력을 가졌으며, 전쟁 시(war-poetry)는 전투에서 마법적인 힘을 발휘했습니다.
◦ 메카 순례와 신앙: 사바(Saba)와 같은 고대 남아라비아 문명은 공유된 신에 대한 숭배를 통해 정치적 통합을 이루었으며, 이는 이슬람의 통합 사상에 영향을 주었을 수 있습니다. 메카 순례는 사바의 일마카(Ilmaqah) 신 숭배와 유사한 요소가 있었습니다.
◦ 문화적 교류: 고대부터 그리스어, 라틴어 등 다양한 언어로부터의 차용어는 아랍 문화가 외부와 상호 작용하며 발전했음을 보여줍니다.
◦ 아랍식 필체: 아랍어 필체는 꾸란의 계시와 인간의 아름다움 모두를 담아내는 예술 형태로, 시각적 언어의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 상인과 선교사의 유동성: 대규모 부족 이동 시대가 끝난 후, 상인과 선교사들의 유동성은 아랍 문화를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하고 유지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 대중문화: 이집트 드라마와 옴 쿨숨(Umm Kulthum)의 노래는 아랍 세계 전역에 걸쳐 공유되며 통합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분열의 요인: 내부 갈등과 정체성 투쟁
◦ 페르시아와의 고대 적대감: 아랍과 페르시아 간의 반목은 이슬람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부족 대 제국, 부족장 대 샤(shah) 등 다양한 형태로 역사 내내 지속되었습니다.
◦ 정착민(hadar)과 유목민(badw)의 이분법: 아랍 사회의 근본적인 이분법은 정착된 도시 사회와 유목민 부족 사회 간의 오랜 대화이자 갈등으로, 서로를 경멸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로 나타났습니다.
◦ 슈우비야 운동: 비(非)아랍 무슬림들이 아랍 문화와 언어의 중요성에 도전하며, 자신들이 이슬람과 아랍어의 발전에 동등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여 문화적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 개인주의와 전체주의의 대립: 수'룩(su’luks)과 같은 '방랑자' 시인들이 보여준 절대적인 개인주의는 이슬람 시대에 도래할 신학적, 정치적 전체주의적 사회에 의해 부정될 것이었습니다.
◦ 이중적인 정체성: 아랍적 존재의 본질에는 종종 이중성이 내포되어 있으며, 이는 모순되는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jawn'은 검은색과 흰색 모두를 의미하고, 'jalal'은 크고 작은 것을 모두 의미합니다. 아랍의 정체성은 종종 외부 세력에 대한 반대(opposition)를 통해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3. 정치적 역학 관계를 통한 분열과 통합 (Political Dynamics: Division and Unity)
• 통합의 기반: 이슬람 국가의 형성
◦ 무함마드의 성공: 예언자 무함마드의 성공은 정착 사회와 유목 사회의 요소를 결합하여 초기 이슬람 국가를 수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부족적 유대를 초월하는 **'움마(ummah)'**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 초기 칼리프의 권위: 무함마드는 알라의 이름으로 **"초월적인 권위(hyper-authority)"**를 행사할 수 있었고, 이는 이전 부족장들의 자의적인 통치와 달리 거의 반대가 불가능한 권위였습니다.
◦ 범아랍주의: 20세기 나세르(Nasser)의 범아랍주의와 바트당(Ba'th) 운동은 아랍인들이 언어를 중심으로 하나의 민족으로 통합되기를 열망했습니다.
◦ '샤브(sha’b)'의 재해석: 2011년 아랍의 봄 시위에서 외쳐진 "인민은 정권의 붕괴를 요구한다"는 구호에서 'sha’b'이라는 단어는 고대 남아라비아 비문에서 나타나는 '정착된, 복수적인, 부족적이지 않은 사회'를 의미하는 역사적 울림을 가집니다.
• 분열의 요인: 권력 투쟁과 외부 개입
◦ 내부 갈등과 불화: 알-바수스 전쟁(War of al-Basus)과 같은 오랜 부족 간의 불화는 1,50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데자뷰"처럼 현재의 갈등을 비추는 경고성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무함마드의 사후 후계자 문제와 내부 권력 투쟁은 이슬람 공동체의 지속적인 분열로 이어졌습니다.
◦ 외부 세력의 개입: 로마와 페르시아 같은 외부 제국들은 아랍 부족들을 자신들의 대리인으로 삼아 분열을 조장했습니다. 20세기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에 새로운 국경을 그어 지역을 분할하고, 위성 왕(client-kings)을 통해 아랍 세계의 내부 분열을 이용했습니다.
◦ 외세 지배: 9세기 이후 칼리프 체제는 투르크족, 부와이흐(Buwayhid) 왕조 등 비(非)아랍 군사 엘리트의 지배를 받으며 아랍인의 정치적 권력은 약화되었습니다.
◦ 종파적 분열: 시아파(Shi’ah)와 순니파(Sunnah) 간의 근본적인 분열은 아랍 역사의 주요 갈등 원인이었습니다.
◦ 권위주의 정권: 많은 아랍 국가에서는 시민의 자유가 부재하고, 통치자들은 "단합"을 외치면서도 반대 세력을 가혹하게 탄압하며 공포를 통해 일시적인 통합을 유지했습니다.
◦ 시민 의식의 부재: "공화국"이라는 단어가 아랍 국가들의 공식 명칭에 자주 등장하지만, "시민"이라는 개념은 아직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이는 권리와 의무가 상호 작용하는 현대 국가의 시민 개념이 아랍 세계에 뿌리내리지 못했음을 시사합니다.
이처럼 아랍 세계의 통합과 분열은 언어적 통일성, 공유된 문화적 유산, 그리고 외부 및 내부 정치적 역학 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오랜 역사에 걸쳐 나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