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도에 대학에 입학해
모범생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다가
(그냥 점쟎은 표현으로 '모범생이 아니다'라는 정도가 아님
前 전지모 모회장은 지난 겨울, 나에게 학창시절 넌 양아치같았다고 말했음 ㅠ.ㅠ)
제대후 정신차리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but, 이때부터 공부를 하긴 했는데 지리하곤 거리가 먼 공부만 실컷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살이 새옹지마라고
돌고 돌아서
대학 시절 스터디 클럽에서 공부하던 내용을 지리 시간에 가르치고 있더라구요.
최근 브렉시트때문에 언론이 시끌시끌하네요.
영국의 EU탈퇴에 관해 생각해보다
문득 대학때 노트가 생각나 찾아봤습니다.
오호~~
이런 내 노트가 아직 살아 있다니...
심지어 글씨도 지금보다 100배는 잘 쓰는 듯.
(지금은 완전 악필)
포스트잇까지 붙여가면서 공책을 잘 정리했네요.
그때도 이런거 알려주는 교수님은 없어서
아마 혼자 독학한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이때는 공부에 취미가 있었던 시기라서 그런지
이때 노트필기 내용이 지금도 가물가물 기억나는데
두번째 페이지에
유럽통합과정을 하나씩 찾아가며 정리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쓰잘데기 없는 추억팔이는 이걸로 끝내고.......
얼마전,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으신 산타크로체님 블로그에 Brexit에 관한 글이 올라왔습니다.
산타크로체님 글중에서 지리시간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골라
약간의 조작(?)을 거쳐
여기에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 1921년 벨기에 + 룩셈부르크는 이미 경제 동맹을 맺었고
- 2차 세계대전중,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3개국 망명 정부가 런던에서 종전후 관세 동맹을 맺기로 합의함.
- 이 세 나라를 베네룩스 3국이라 하는데 동맹탄생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지리적 인접성이였음.
- 1947년 지리적으로 인접한 북방국가들도 관세동맹 협의를 시작함.
- 북유럽의 관문인 덴마크로부터 시작해서, 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Nordic 4개국도 노르딕경제공동위원회(Joint Nordic for Economic Cooperation)를 결성하려 했지만, 노르웨이의 반대로 실패로 돌아감.
- 그 이유가 노르웨이가 스웨덴이나 덴마크에 비해 경제력이 너무 떨어져서 임. 2016년 현재의 시점으로 보면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말입니다만 ㅎㅎ
- 1948년 6월에는 지리적 인접성을 가진 몇몇 국가들끼리 협력체를 만드는 국지적 모임을 넘어서는 유럽 전체 통합체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프랑스 외무장관 비도가 유럽공동회의(European Assembly)창설을 제안했으나 영국의 반대로 무산 됨.
실질적인 범유럽 통합 기구는 다소 엉뚱한 곳에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 1947년 6월 마셜플랜 제의 : 전후 막대한 전란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미국 국무장관 마셜이 유럽 전후 복구와 경제 부흥을 위한 미국 지원계획 (마셜 플랜)을 발표
- 최초 마셜플랜은 유럽 전지역을 대상으로 하였기에 동유럽의 실질적 지배자인 소련의 외무상을 초청
- 마셜플랜을 통해 미국의 영향력이 동유럽까지 미칠 것을 염려해 소련은 마셜플랜을 거부
- 그래서 마셜플랜은 서유럽만을 대상으로 시행됨
- 1947년 12월 마셜플랜 실행을 위한 파리 회의가 열림
- 이때 스페인은 프랑코 독재체재라 국정이 어지러워 참여하지 못하고
- 유럽 전체의 원망을 사고 있던 서독은 초청 자체를 받지 못했음
- 소련의 눈치를 많이 봐야 했던 핀란드는 불참선언
- 1948년 14개국이 참여한 유럽협력기구 OEEC (Organization of European Economic Cooperation) 탄생
- OEEC의 가장 큰 임무는 마셜플랜으로 들어올 원조의 분배를 논의하는 것
- 훗날 OEEC에 미국이 가입함으로써 선진국 간 경제협력을 위한 기구, OECD로 재탄생하게 됨.
초국가적 성격이 나타난 최초의 기구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 지리시간에 자주 언급되는 루르, 자르지역이 그 단초를 제공함
- 1950년 프랑스는 외무장관 슈만이 제안하여 슈만플랜
- 슈만플랜의 배경 :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 1 2차 세계대전. 공통점 독일과의 전쟁이였다는 점.
프랑스가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이 되자, 이 참에 독일을 분할 지배를 하고 싶어함
- 그런데, 1948년 소련이 서베를린 봉쇄하면서 미-소간 긴장이 커지고, 미국 영국은 분할 지배를 끝내고 서독 정부를 수립 지원
- 옆나라들 눈치를 보니 독일 분할지배는 물건너가고
- 새로운 방법으로, 서독의 석탄 생산지인 '루르'와 '자르'를 국제적 감시 체제에 두고 독일을 견제하기로 함
- 미국도 프랑스의 역사적 아픔을 십분 이해하고 '자르'는 프랑스 관할하에 두고, '루르'는 국제 감시 체제하에 두기로 결정함.
- '루르'의 국제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게다가 프랑스의 식민지나 다름 없던 '자르'도 1956년 주민투표를 통해 서독으로 귀속됨
<위쪽이 루르, 아래쪽이 자르>
<철광석으로 유명한 '로렌' 지역 지도>
프랑스어: Alsace-Lorraine (알자스-로렌)
독일어: Elsaß-Lothringen (엘자스-로트링겐)
산업시대 '로렌'지역은 완전 젖과 꿀이 흐르는 지역
자르의 석탄과 로렌의 철광석 - 프랑스가 먹고 싶어하는 곳
이렇게 독일에 대한 직접적 통제가 흐지부지 되자 초국가단체가 등장하게 된다.
- 지리시간에 강조되는 초기 공업입지의 핵심은 석탄과 철강.
- 프랑스 외무장관 슈만이 제창한 슈만플랜(Schuman Plan) : 독일의 석탄과 철강을 유럽전체가 콘트롤하면 독일은 다시 전범국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함
- 1951년 4월 18일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출범
- 당초 슈만 장관은 ECSC에 서유럽 국가 모두 참여하기를 원했으나 프랑스, 서독,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이탈리아 6개국만 합류함.
(당사국인 프랑스-독일 + 베네룩스 3국 + 이탈리아)
- ECSC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주권을 넘어서는 통제력을 갖는 존재가 탄생했다는 점"
- 현재 EU의 트로아카 지배구조(집행위원회+이사회+의회)의 모태가 되었다는 점
- 한계점으로는 쿼터나 관세 철폐하는 것만으로는 공동시장까지는 창설할 수 없었기에 결국 더 큰 차원의 공동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음
나머지는 아래 그림으로 대체~
유럽통합의 과정을 보면
마셜플랜으로부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유럽내부에서 본격적 시작은 ECSC(유럽석탄철강공동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The Economist - 2018.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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